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정치인들은 ‘정치 영화’를 이용해서 ‘영화 정치’를 한다. 대통령이나 정치적 이슈를 다룬 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여야는 ‘영화의 정치화’를 통해서 색깔논쟁을 일으키며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선거용 정치 영화’를 만들어서 돈벌이하려는 제작사와 그것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일치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영화를 자신의 정치철학이나 메시지를 전달하고 지지자를 결집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민주화운동을 다룬 남산의 부장들(10·26), 택시운전사(5·18), 1987(6·10), 서울의 봄(12·12) 등이 진보진영의 메시지 전파에 이용되었다면, 건국·산업화·안보를 다룬 국제시장(산업화), 연평해전(남북충돌), 인천상륙작전(6·25), 건국전쟁(이승만) 등은 보수진영에 이용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스크린 정치’라는 영화의 ‘정치마케팅’이다.

그러나 영화의 정치화는 부작용이 크다. 영화 제작사나 감독이 정치적 사실을 왜곡할 수 있고, 정치권은 그 영화를 편향적,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여 정치적 선전·선동의 도구로 삼기 때문이다. 정치성향에 따라 선호하는 영화가 다를 뿐만 아니라, 동일한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평가는 전혀 다르다.

영화 ‘건국전쟁’의 경우, 보수는 이승만 대통령의 ‘공(功)’에, 그리고 진보는 그의 ‘과(過)’에 초점을 둔다. 서로 다른 관점과 잣대로 정치적 여론몰이에 이용하는 것이다.

‘영화의 진영정치화’는 국론분열과 적대정치를 심화시킨다. 언론들이 정치 영화에 편을 갈라 싸우면 갈등은 격화되고, 감독의 제작 의도는 왜곡·훼손될 수 있다. 특히 선거를 겨냥해서 영화인·정치인·언론인들이 야합하여 영화를 정치화할 경우 영화예술의 순수성은 훼손되고 정치의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전체주의체제에서 영화는 이념과 정권의 홍보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영화를 만드는 영화인들의 성찰과 각성이 필요하다. 물론 영화는 매체의 특성상 정치적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영화인이 정치인의 노예로 전락하면 영상예술의 발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영화의 상업성을 인정하고 영화인의 가치관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제작사나 감독은 영화발전을 위해 양심과 책임을 갖고 정치적 진영논리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정치인들의 영화 정치는 더 큰 문제다. 정치를 잘해서 민심을 얻으려하지 않고 영화에 기대에 표심을 사려고 잔 꽤만 부리는 행태는 한심하다.

영화 정치는 내편 결집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비판자나 중도층을 끌어들이기는 어렵다. 영화 한편 보고 표심을 바꿀 유권자가 어디 있겠는가. 영화를 정치의 수단으로 삼으면 영화예술도 죽고 정치발전도 없다.

삶은 현실이고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영화의 도구화, 즉 영화로 정치를 할 것이 아니라 정치로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은 ‘영화 같은 정치’가 아니라 정도정치(正道政治)를 통해서 사회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국민에게 ‘영화 같은 감동’을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