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어떤 언어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낡아지다가 언젠가는 사라진다. 문명 대상물이 시대 변화에 따라 소멸하면 그 이름도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함께 사라진다. 오래된 무덤 속에서 발굴된 유물이 고고학의 대상이 되듯이, 문명의 변두리 사람들이 사용하던 사물의 이름인 방언도 언어고고학적 유물이다. 소설가들이나 시인들은 오랜 언어 시간의 그물코를 짜는 언어 문명의 필경사이다. 문학 작품은 문명의 변천사, 그 속에 알알이 맺힌 사람들의 정서와 마음의 파문을 정성으로 직조한 한 필의 천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3월 8일, 대구 3·8독립만세운동 기념식이 있었다. 대구 3·8독립만세사건의 주역이기도 했던 이상화 시인은 지금까지 71편의 시작품을 남겼다. 국어맞춤법통일안이 정착되지 않았던 1920년대에 주로 작품을 발표했던 이상화의 시 작품에는 다양한 대구방언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구방언을 활용한 이상화의 시들은 엄청난 왜곡의 세월을 거쳤다. 방언에 이해도가 낮은 비평가나 출판업자들에 의해서였다. 이상화의 대표작인‘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깝치지 마라’가 ‘까불지 마라’로 해독된 적도 있다. 심지어 국정국어교과서에서도 그런 오류가 수정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비를 다고’라는 작품의 ‘이장’은 ‘농기구, 연장’를 뜻하는 대구 방언이다.‘병적 계절’등에 보이는 ‘짬’은 ‘어떠한 일이 일어난 영문이나 사건의 앞과 뒤’(이상규, 2001)라는 의미다. 그런데 정한모·김용직의 ‘한국현대시요람’에서는 ‘짬’에 대한 대구방언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로 ‘짬’을 전혀 의미가 닿지 않은 ‘셈’으로 교열하기도 하였다. 이상화의‘가장 비통한 기욕’에 보이는 ‘햇채’는 ‘빗물이나 집안에서 버린 물이 흘러가도록 만든 시설’로 ‘수채’의 경상도 방언인데. 이를 ‘바다풀’ 곧 ‘해채(海菜)’로 해석한 한심한 오류도 있다. 사라져 없어질 위기의 고어인 지역 방언을 시 속에 이처럼 살포시 감추어 둔 항일시인의 작품을 후손들은 무지하고도 무관심하게 훼손하면서 차세대에게 가르쳐왔다.

1950년 정음사에서 출간한 ‘이상화시집’에서 범했던 오류는 표준어 관점에서 방언을 제대로 해석치 못한 채로 범해졌고, 그 이후 출간한 시집에도 거의 수정되지 않은 채 80년대까지 이어져 시집이 출간되고 교과서에까지 실렸던 것이다. 80년대, 이러한 이상화의 시 71편을 수합하여 필자가 이를 전면 교열하여‘정본 이상화시전집’을 출간했다. 아직까지도 이상화의 시 작품이 몇 편이지, 시에 어떤 부분이 오류로 전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없다. 대구를 대표하는 항일 시인인 이상화의 온전한 문학작품정전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이들은 물론 없다. 이상화 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수상하고 또 기념사업회에서 대구시의 지원으로 현창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정작 이상화 문학의 정전화 작업에는 독립운동단체에서나 지방정부에서조차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상화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대구 출신의 소설가 현진건의 작품에도. ‘국해(시궁창의 흙), 데불다, 뒤통시, 몰, 진동한동, 불버하다, 삽작, 엉설궂다, 찰지다, 거진’과 같은 방언형을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1936년 무렵동아일보에 연재한 현진건의 ‘무영탑’에는 ‘별판’, ‘찐답잔은’, ‘노박이’, ‘진둥한둥’, ‘감때사나운’과 같은 방언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곳곳에 박혀있다.

식민지의 작가들은 왜 구태여 방언이라는 천으로 시와 소설을 직조했을까? 공식적인 언어가 아닌 방언을 사용했던 이유는 바로 방언의 생명성의 문제였을 것이다. 방언은 살아있는 현재진행형의 언어이기 때문에 시적 주인공의 현존성, 소설 속 인물의 토착성을 위한 일종의 전략이었을 것이다. 특히 이상화의 경우, 시인의 고향 방언이라는 비장의 언어를 통해 ‘낯설게 하기’라는 실험적 자유시로 우리 한국어의 무한한 가능성을 시적 언어를 통해 드러내려는 전략이 아니었을까? 서울 말씨와 다른 방언을 시적 매개로 삼았던 이유는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고향에 대한 향수를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면서 동시에 시간적으로 다가올 미래의 고향에 다가가려는 심리적 기제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상화문학 현창사업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바로 이상화문학을 총량화하고 반듯하게 정전화하는 사업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후손된 도리요 책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