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부인 손명순 여사가 7일 별세했다. 오늘 발인한다. 3김 내외가 모두 떠났다. 정치는 끊임없이 변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손 여사의 내조(內助)를 모범 사례로 꼽는다.

손 여사는 YS 재임 기간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전의 다른 영부인들과 달리 고위직 부인들 모임을 모두 없애버렸다. 옷의 상표도 모두 떼고 입었다. 대신 청와대 수행원과 운전기사, 여직원들을 눈에 띄지 않게 챙겼다.

손 여사는 1951년 결혼 이후 평생 YS의 정치 인생을 함께했다. 필요할 때는 나서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1983년 YS가 목숨을 걸고 23일간 단식할 때 외신기자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상황을 전파한 사람이 손 여사다. 90년 3당 합당 때는 최형우 전 의원 등이 합류를 거부하자 설득한 사람도 손 여사다. 그런 위기를 제외하면 상도동 집에서 매일 100명 가까운 비서와 방문객에게 밥과 시래깃국을 대접하며 조용히 내조했다.

‘김영삼 회고록’에는 93년 2월 24일, 청와대로 들어가기 하루 전 가족회의 이야기가 나온다. YS는 “가장 큰 걱정이 친·인척”이라며 “이상한 사람들이 속을 다 내어줄 듯이 접근해서 너희를 망치고 나라를 망치게 한다. 절대 이권이나 인사에 끼어들 생각을 하지 마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장개석 대만 총통의 일화를 소개했다. 장 총통이 대만으로 쫓겨났을 때 며느리가 밀수와 사치를 일삼자 보석상자 하나를 주면서 집에 가서 열어보라고 했다. 며느리가 집에 가서 열어보니, 그 안에 권총이 들어 있었다. 며느리는 자살했다.

그런 YS도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아들 현철씨와 관련 국민에게 사과했다. 그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임기 중 아들을 구속했다. 그렇지만 손 여사는 한 번도 입방아에 오르지 않았다.

‘위대한 퍼스트레이디, 끔찍한 퍼스트레이디’라는 책은 미국 시민이 좋아하는 영부인도 내조형에서 전문가형으로 바뀌어왔다고 말한다. 어느 쪽이건 사적 욕망을 드러내는 영부인을 좋아하는 시민은 없다. 민심을 거스르는 영부인은 성공할 수 없다.

이 책이 최악의 영부인으로 꼽은 매리 링컨(16대)은 장갑을 사 모으는데 몰두했다. ‘대통령 부인’(Mrs. President)이라는 서명으로 명령하기도 했다. 줄리아 그랜트(18대)는 사치스러운 오락과 환대를 위한 자금을 확보하려고 음성적인 자금을 모았고, 영부인의 권력을 이용해 부패 방지조사를 막았다. 제인 피어스(14대)는 사고로 죽은 아들과 대화한다며 백악관에서 강신(降神)회를 열기도 했다. 낸시 레이건은 백악관의 정치적 운영을 공개적으로 간섭해 영부인의 활동 범위를 벗어났다는 비판을 받았다.

우리는 아직 영부인이 설치면 못마땅하게 여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씨로부터 13억 원을 받아 수사받자 “자기 잘못을 아내한테 떠넘긴 못난 남편이 되어 있었다”고 자책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해외여행 버킷리스트, 라오스에서 대통령을 앞질러 행진한 것 등으로 비난받았다.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 민주당은 특검을 추진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양평을 방문해 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을 공격했다. 명품백을 받는 장면이 담긴 유튜브가 총선 최대 악재가 될뻔했다. 더구나 윤 대통령이 사과 대신 한동훈 비대위원장 사퇴를 요구해 파문이 일었다. 그대로 한 위원장이 물러났으면 어떻게 됐을까.

이재명 대표의 부인 김혜경 여사는 경기지사 시절부터 ‘혜경궁김씨’ 논란이 있었다. 경기도 법인카드로 당직자에게 음식을 대접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 공무원을 개인비서처럼 부리고, 법인카드로 생활비를 썼다는 폭로도 있었다. 당에 ‘배우자실’이란 조직을 만들고, 부실장을 단수 공천했다 번복하는 소동도 있었다.

배우자는 선출되지 않았다. 선출된 배우자를 돕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남편의 공적 활동을 간섭하거나, 자기가 선출됐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모범을 보여야 다른 부인의 일탈도 막을 수 있다. 여사님들, 제발 자중하시라.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