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희 작가
유영희 작가

어르신이라고 불릴 나이가 가까워져서 그런지 요즘 어르신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린다. 존칭의 의미를 담았다고는 하나 실제 사용할 때는 사회적 약자한테만 쓰는 말처럼 들린다. ‘어르신’이라고 또박또박 발음해주면 그나마 그런 기분이 덜할 텐데, ‘어르신’을 ‘으르신’으로 부르는 사람도 많고 이렇게 부를 때는 대부분 톤도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보니, 귀도 잘 안 들리는 불완전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가만히 보면, 나이별로 붙이는 이름의 형식이 다 다르다. 대략 초등학생까지는 어린이라고 하는데, 청소년부터, 청년과 중장년까지는 시기를 나타내는‘년’으로 부르다가 65세 이상 노년은 갑자기 ‘어르신’으로 부르고 있다. 따지고 보면, ‘어른’은 중장년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겠지만, 단순히 그렇게 기계적으로 볼 수는 없다. ‘이 시대의 어른’이라는 용례에서처럼, ‘어른’은 귀감이 될 만한 훌륭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멘터리도 있는데, 여기서도 ‘어르신 김장하’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니 ‘어르신’은 ‘어른’의 높임말이라기보다는 ‘늙은이’의 높임말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단어라는 것이 참 오묘해서 같은 ‘이’라도 ‘어린’에 붙으면 높임, ‘늙은’에 붙으면 하대처럼 보인다. 국어사전을 보면, ‘어린이’는 ‘어린 아이’를 높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젊은이’는 그나마 가치중립적으로 그저 젊은 나이대 사람으로 생각되는데, ‘늙은이’는 폄하하는 말처럼 들린다. 실제로 ‘늙은이’는 대부분 욕으로 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나온 단어가 ‘어르신’일 것이다.

애당초 어른이라는 명사에 어떻게 ‘시’를 붙일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어 찾아보니 ‘어르신’의 어원은 16세기 ‘얼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얼운’은 동사 ‘어르’에 사동접미사 ‘우’와 관형사형 어미 ‘-ㄴ’이 붙은 것이고, ‘어르신’은 거기에 존칭을 의미하는 선어말어미 ‘시’를 붙인 것이란다. 그러고 보면, 어르신이라는 단어는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고 족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어르신’이 ‘어른’보다 낮춤말 같이 느껴진다. ‘어르신’의 가장 큰 문제는, 개인적 관계에서 마음을 담아 사용하는 존칭을 보통명사로 만들어서 존대의 의미를 한없이 가볍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르신’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존대의 마음을 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거기에다 우리 사회에서 65세 이상 노인의 지위는 한없이 처량하다. 빈곤율 세계 1위는 말할 것도 없고, 65세만 넘으면 갈 곳이 없다. 호칭만 어르신이지, 그에 걸맞은 처지도 아니고 대우도 없다. 그저 호칭 인플레만 고공행진일 뿐이다. 이러니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달가워할 수가 없다. 오히려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들으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차라리 ‘어른’이 백번 낫다.

공식적인 명칭에 존칭을 붙이는 해괴한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좋게 보면, 긍정적 차별이라고 볼 수 있지만, 실속 없는 ‘긍정적’이 달갑지 않은 것이다. 긍정적 차별도 차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