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장은재의 명품 노거수와 숲 탐방
(19) 상주 상현리 천연기념물 탑송 노거수

상주 상현리 천연기념물 노거수는 500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살아냈다.

길일을 택하여 나즐로(나 홀로 즐겁게) 노거수 탐방에 나섰다. 길일을 택한다고 하여 사주나 주역 풀이가 아니라 날씨나 교통 혼잡, 나의 일정 등을 고려하여 편안한 날을 잡는다는 의미이다.

상주시 화서면 상현리 천연기념물 제293호 반송 노거수를 찾았다. 대구에서 상주-청원 간 30번 고속도로를 달리다 화서 IC를 빠져나와 화서면 소재지 화서초등학교 뒤편 도로를 따라 상현리 마을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은 지름길로 좁은 농로 길을 안내했다. 이를 무시하고 멀리서도 보이는 거대한 소나무 노거수에 빨려들 듯 끌려갔다.

 

키 15m 수관 폭 28m의 500년 노거수
반송이란 이름처럼 수형은 우산형으로
나뭇가지가 땅을 향해 흙과 맞닿을 듯

옛날부터 이무기가 살고 있다는 전설
마을 지켜주고 주민들 재앙 막아주며
궁극적으론 노거수를 보호하는 역할

마을 앞 허허로운 공간을 소나무 한 그루가 꽉 채워주었다.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방문객을 위한 주차장과 화장실, 쉼터용으로 정자를 설치해 놓아 반송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더 없는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마을 앞 넓은 공간에 천연기념물 반송 노거수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었다. 그 늠름하고 우람한 모습에 압도당하여 고개를 숙이고 경배를 드렸다. 해는 하늘 중천에 있지만, 소나무 키를 벗어나지 못하고 나뭇가지에 걸려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그림자를 밟으면서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죄스러운 마음이 들 정도로 경외감이 들었다.

키 15m, 가슴 높이 나무 굵기 5.1m, 수관 폭 28m나 되었다. 크기만큼이나 오랜 세월의 연륜이 나무 곳곳에 묻어났다. 나이가 무려 500살이라 했다. 양팔을 벌려 노거수를 안아 보았다. 심호흡하면서 노거수와 교감해 보았다. 그 웅장한 힘의 에너지를 가슴에 담고 연륜으로 얻은 삶의 지혜를 가르쳐 달라고 마음속으로 소원했다. 기운이 솟고 정신이 맑아졌다.

주변 공원에는 예쁜 돌탑을 8개나 쌓아 놓아 옛 이름을 연상하게 하였다. 돌탑은 시간과 노력의 상징물이다. 꾸준한 노력과 인내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반송이라는 소나무 성질의 일반명사 대신에 탑송이라는 옛 이름이 더 정감이 갔다. 앞으로 탑송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주고 싶다.

주민들의 나무 사랑이 돋보였다. 나무 주변에는 빗물이 잘 빠지도록 물 빠짐 작은 도랑을 설치해 놓았다. 나무 둘레에 목책을 설치하여 함부로 들어가서 나무를 훼손하지 못하게 해 놓았다. 그로 인하여 답압 피해를 막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나무를 심었을 때 뿌리 주변에 북을 돋우어서 심었는지 아니면 오랜 세월로 인하여 흙이 빗물에 씻겨 주변의 땅이 낮아졌는지는 몰라도 나무의 생육에는 최적지로 만들어 놓았다. 주변의 환경을 보아도 먼 옛날 마을 주민이 심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연유로 인공 식재를 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을 경관은 물론 마을 품격까지 올려놓은 우리 조상의 지혜로움이 돋보였다.
 

워낙 나무가 거대하다 보니 나뭇가지의 부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지지대를 세우고 가지와 가지를 서로 줄로 연결하여 묶어 놓았다. 100여 년 전에 벼락으로 인하여 고사한 나뭇가지는 수피를 벗기고 균이나 충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방수 방부처리를 해 놓았다. 반송이라는 이름처럼 나무의 수형은 우산형으로 나뭇가지가 땅을 향해 흙과 맞닿을 듯 치렁치렁 늘어져 있었다. 빛을 향하는 나무의 속성으로 보아 푸른 하늘로 뻗어나가야 할 나뭇가지가 반대로 흙냄새 맡으려는 듯 땅으로 뻗어가는 모습이 신기해 보였다. 먼 훗날 땅과 맞닿아 뿌리와 서로 만나리라.

주변에 빛을 방해하는 그 무엇도 없어 자유로움인지 아니면 나무의 DNA가 그런 것인지 참으로 신통방통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뿌리는 예상컨대 틀림없이 연리근일 것이다. 하늘로 뻗어 올린 줄기를 봐도 그렇고 웅장한 수형을 보아도 그렇다. 나무의 수관 폭만큼 뿌리도 뻗어나간다고 하니 상상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몸을 지탱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뿌리의 강인함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보이지 않는 도움에 나무는 살아가고 있다. 우리 또한 이러한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옛날부터 이 소나무 노거수에는 이무기라는 상상의 동물이 살고 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주민들은 나뭇가지가 부러져도 가져가지 않을뿐더러 나무 아래 떨어진 솔갈비도 긁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정월 대보름날이면 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비는 마을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이러한 노거수 설화는 마을을 지키고 주민들의 재앙을 막아주는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노거수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노거수 설화의 향유집단인 마을 주민들은 인간 행위에 대한 노거수의 징벌과 영험을 이야기하면서 노거수를 신성시하였다. 노거수는 마을 주민들의 어떤 운명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암시를 나타내기도 한다. 예를 들면 당산나무를 베어낸 사람이나 가족이 결국은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는 어느 마을에서든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조상 대대로 마을의 역사를 직접 체험하며 또한 후손까지 살아가는 당산나무는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노거수 설화는 민속문화, 민속신앙의 차원에서 노거수가 보호되는 설화로서 설화 속에는 우리 조상의 자연숭배 사상, 조상숭배 사상, 영혼 불멸의 사상 등이 있다. 이러한 노거수 설화는 전승 집단의 의식이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어 흥미와 교훈을 주기도 하며, 삶의 지혜를 얻게 해 준다. 그뿐만 아니라, 마을의 결속을 강화하고 마을의 경관을 이루는 노거수를 보호해 주는 기능으로 발전하여 전체적 생태계 천이의 자연성과 생물 다양성을 높여주는 기능으로 발전하였다.

상주 상현리 천연기념물 탑송도 노거수 설화로 인하여 오늘날까지 500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무탈하게 살아오고 또 앞으로 살아갈 것이다. 우리 조상들의 나무사랑을 설화로 옷을 입혀 보호한 지혜로운 삶에 감탄할 따름이다. 늘 느끼는 감정이지만, 노거수와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있고 싶어 떠날 때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고 몇 번이고 되돌아보곤 한다.

노거수에 얽힌 설화들

노거수에 대한 고사와 설화는 여러 유형으로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다. 징벌담(懲罰談)은 당산나무를 신성시해야 하고 제사를 소홀히 하면 벌을 받는다는 것으로 가장 대표적인 노거수 설화이다.

영험담(靈驗談)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견하거나 인간에게 풍요를 가져다주고, 당산나무에 해를 가하면 울거나 혈흔을 나타내는 영험이 있다는 노거수 설화이다.

동물담(動物談)은 노거수에 특정 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그 생물에게 위해를 가하면 천벌을 받는다는 설화이다. 동물담의 노거수 설화 속에는 뱀이 높은 빈도로 나타나고 있다. 뱀은 사탄과 같은 사악함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지만, 당산집 또는 당산나무를 보존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킴이 동물로도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글·사진=장은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