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사 천왕문
적천사 천왕문

청도와 밀양의 경계 짓는 화악산 둘레를 타고 가다가, 한 대의 차량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면, 어느 순간 산자락 중앙에 옴폭하게 자리 잡은 작은 사찰을 마주한다. 산 좋고 물 좋고 인심도 좋다는 청도의 깊은 골짜기에 터를 잡은 이 사찰은 신라 문무왕 4년(664)에 원효대사가 수도하기 위해 토굴로 먼저 세웠다는 천년고찰 적천사(磧川寺)이다.

적천사는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된 이래, 신라 흥덕왕 3년(828)에 심지왕사에 의해 중창되고, 고려 명종 5년(1175)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중건되어 500여 명의 수행승이 참선하는 불교의 성지가 되었다. 당시 적천사는 도적떼가 점거하고 있었는데, 보조국사 지눌이 남산에 올라 가랑잎에 호랑이 호(虎)를 적어 바람에 날려 보내니, 가랑잎이 호랑이로 변해 도적떼를 몰아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크게 번창했던 적천사는 임진왜란 때 화를 입어 소실되었고, 500여 명의 수행승은 운문사로 옮겨갔다. 현종 5년(1664)에 적천사를 다시 중건하면서 사천왕상을 조성하고, 숙종 20년(1694)에 태허선사에 의해 크게 중수되고, 다음해에 괴불탱 및 지주를 마련한다. 다시 대사찰로 자리매김하던 적천사는 구한말에 의병들의 모임 장소,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의 집합소로 활용되면서 축소되었다. 현재는 동화사의 말사 제9교구이다.

적천사의 앞마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운문사의 처진소나무·천황사의 전나무·송광사 천자암의 곱향나무·내소사의 느티나무처럼 적천사의 암수 은행나무도 절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대단히 강렬한 인상이다. 높이(약 30m)는 고개를 꺾어 올려다봐도 풍성한 가지에 가려 그 끝이 보이지 않고, 둘레(약 10m)는 성인 여섯 명이 손을 잡고 둘러서도 온전한 원을 만들기에 부족하다. 특히 암나무는 대략 3m 높이까지는 한 줄기로 성장하다가 세 갈래로 가지가 나눠지며, 가지 사이사이에 혹이나 방망이처럼 생긴 유주가 발달했다. 한 컷의 사진은 물론 한눈에 담아내기에도 버거운 이 은행나무는 봄이면 세월이 무색하게 새로운 싹을 대거 피워내고, 여름이면 넓고 짙은 그늘을 만들고, 가을이면 풍성한 은행잎으로 세상을 물들이고, 겨울이면 설원 위에 그 유려한 몸매를 드러낸다. 수령도 대략 천년에 가까운 800여 년을 적천사와 함께 견뎌왔으니 살아있는 화석이자 적천사의 역사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적천사의 은행나무는 특이하게도 불교의 삼문, 일주문·천왕문·불이문 중 일주문으로 여겨진다. 즉, 적천사에는 흔히 절마다 일자로 세워져 있는 일주문이 없다. 조선 숙종 20년(1694) 절을 중수할 때 세운 비석에는 ‘보조국사 지눌이 선종의 뜻에 따라서 적천사를 중건할 때, 사적기 대신 은행나무를 심어서 창건을 대신하였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적천사의 입구에 있는 웅장한 은행나무가 바로 보조국사 지눌이 평소에 짚고 다니던 지팡이였다는 것이다.

은행나무를 뒤로 하고 계단을 오르면 두 번째 관문인 천왕문에 들어선다. 적천사의 천왕문에는 목조 사천왕상이 있는데, 부리부리한 눈썹·주먹코·울퉁불퉁한 목주름이 무섭다기보다는 해학적이다. 이는 조선 후기 예술 작품의 특징으로 적천사의 사천왕상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또한 임진왜란 이후 소조로 제작되던 사천왕상은 적천사의 사천왕상을 계기로 다시 목조로 바뀌게 된다. 적천사의 사천왕상은 나무 여러 조각을 연결하여 만들었는데, 4구의 어깨 각도나 옷의 주름·몸체의 모양이 거의 일치하여 일정한 제작틀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적천사 은행나무
적천사 은행나무

천왕문을 넘어가면 배롱나무 정원이, 그 뒤로 무차루라는 누각이 보인다. 무차는 ‘막힘이 없다’는 뜻으로 부처의 사상을 드러내는 명칭이다. 이 누각에는 석조아미타불좌상(1653) 3구를 모셨고, 내부의 통창을 통해 대웅전을 바라볼 수 있다. 대웅전 좌우로 적묵당과 명부전이 있고, 대웅전 뒤로는 조사전과 영산전이 있다. 현재 대웅전에는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1636)이, 명부전에는 석조지장보살좌상 및 시왕상 일괄(1676) 등이 모셔져 있다. 또한 1981년 천왕문 보수를 하다가 사천왕상 안에서 사리, 다수의 경전, 의류, 다라니경 등 대량의 복장기가 발견되었다.

천년고찰은 천년에 해당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삶과 전통과 역사와 문화가 아우러져 이어져 오는 것을 의미한다. 수행승들이 수도하는 공간이면서 찾아오는 이들의 힐링하는 공간이고, 투사들의 모임 장소이며, 여러 번의 소실을 맛본 곳이기도 하다. 오래된 노거수가 지키는 장소이며 또한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적천사 경내를 거닐며, 천년을 머금는다는 의미를 되새겨본다.

◇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최정화 스토리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