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정규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안락사(安樂死)를 뜻하는 ‘euthanasia’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eu’는 좋다(good), ‘thanasia’는 죽음(death)을 뜻한다. 즉, 좋은 죽음이라는 의미다.

안락사는 회복할 수 없는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 고통을 덜어준다는 명분하에 생명을 단축해 사망에 이르도록 하는 방법이다. 사망에 이르는 방법에 따라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로 나눈다. 적극적 안락사는 적극적인 행위에 의해 예를 들면 약물 등을 사용하여 환자를 사망하게 하는 것이고 소극적 안락사는 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행위에 의해 환자를 사망하게 하는 것이다.

존엄사(尊嚴死, death with dignity)는 무엇인가. 회생 가능성이 없는 사망 임박 단계의 환자가 연명 목적의 치료를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죽는 과정으로서 생을 마감하는 행위이다.

존엄사와 소극적 안락사의 차이는 무엇일까? 둘 다 환자의 연명치료(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치료 효과는 없으면서 임종 기간만 연장하는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다. 덧붙여 말하면 존엄사는 연명치료 이외의 영양분, 물, 산소 등의 공급을 중단할 수 없지만, 안락사는 영양분, 물, 산소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안락사는 회복할 수 없는 죽음이 임박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방치해 생명을 단축해 사망에 이르도록 하는 방법이지만, 존엄사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으로 자연스러운 임종의 과정을 인위적으로 늦추지 않겠다는 것이지, 죽음을 앞당긴다는 것이 아니다.

존엄사에서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스럽게 죽을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은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사망에 이르게 할 조치를 하는 ‘안락사’와는 다른 것이다.

사실 안락사는 기본적으로 제삼자가 죽음을 원하는 사람의 죽음을 돕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조력 타살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필자는 안락사라는 네이밍(naming)이 미화돼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소극적 안락사’를 존엄사라는 더 미화된 표현으로 바꿔 사용하는 경우가 있고 심지어는 의료진이 약물 등을 마련해주고 환자가 자신에게 직접 그 약물 등을 투여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는 ‘의사조력극단적인 선택(physician-assisted suicide)’도 존엄사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 모두가 긍정하는 가치가 담긴 존엄사라는 네이밍은 긍정의 가치를 실현하는 행위로 인식될 수 있어 사회적 논의를 할 때 ‘존엄사’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주의해야 한다. 존엄사의 선택에 의한 연명치료중단이라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가치판단에 따른 자의적인 선택이고 타인으로부터 강요받지 않는 자유로운 동의(free consent)여야 한다. 연명치료를 중단한다는 것은 한 생명의 불씨를 끄는 것일 수 있으므로 환자가 자의적으로 선택했다 하더라도 선택을 번복할 수 있어야 한다. 환자의 자의에 의한 선택이라 하더라고 시간에 따라 상황에 따라 가치판단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소위 ‘조력존엄사(의사조력극단적인 선택)’에 대한 논의가 가열되고 있다.

지난 2022년 6월 15일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내 최초로 ‘연명의료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소위 조력존엄사법)’을 대표 발의했고 지난 2023년 7월 12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조력존엄사(의사조력 극단적인 선택)’에 대한 인권적 쟁점과 대안에 관한 토론회를 정부기관 최초로 개최했다. 조력존엄사(의사조력 극단적인 선택)는 소생 가망이 없는 환자가 의사에 의해 처방된 약물을 직접 복용 또는 투약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조력존엄사(의사조력 극단적인 선택)’가 인정된다면 스스로 죽을 권리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만약 스스로 죽을 권리가 인정돼 더욱이 약물을 투입해 인간 생명을 단축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생명 경시 풍조가 조장될 수 있다.

또 완치를 위해 정성을 다하기보다 고통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다.

‘조력존엄사’는 “생명을 최대한 존중하고, 의학 지식을 인륜에 어긋나게 쓰지 않을 것”을 서약한 의사의 역할과 “의사는 환자가 자신의 생명을 끊는데 필요한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환자의 극단적인 선택을 도와주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의사 윤리에 근본적으로 배치된다.

이어 ‘조력존엄사는 품위있는 죽음을 돕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문제 같은 외적 상황이 영향을 미침으로써 가족과 사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고려해 보라는 압박으로 내몰 수도 있다.

정말 존엄하게 죽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라면 ‘조력존엄사법’이 아니라 임종의 시간이 오기까지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완화해 보다 편안한 삶을 유지하고 남겨진 시간의 의미를 발견해서 그 시간을 충실히 살아가도록 배려하는 생애 말기 따뜻한 돌봄을 위한 완화의료와 호스피스 강화와 지원이 우선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극단적인 선택률 1위 국가이다.

‘조력존엄사법’을 허용할 경우 국가가 극단적인 선택을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극단적인 선택을 조장하고 극단적인 선택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줄 수 있다. ‘조력존엄사법’이 아니라 ‘극단적인 선택 대책기본법’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