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한국의 근현대시 100년, 그리고 한국현대시단을 대표해온 한국시인협회 50주년을 맞아 우리가 살고 있는 국토를 노래한 시들을 모아 엮은 작품집이 있다. ‘노래하자 아름다운 우리 국토를 : 국토사랑시집’(한국시인협회, 천년의 시작).

이 시집은 우리말의 곡진한 의미와 꼴을 찾는 시인들의 작품을 찾아 알리고 그 속에 알알이 박혀있는 고어나 방언을 되살려 표준국어의 운용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그런 기획 의도를 오탁번 회장은 금방 알아차리고 반겼기에 작품집 제작이 순조로웠다.

1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그는 작년 고인이 되었다. 그가 남긴 유작집인 ‘좋은 시는 다 우스개다’(태학사, 2024)가 며칠 전 출간되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그 당시를 회상하고 있었다. “지지난 달에 나온 이상규 교수의 시집 ‘외젠포티에의 인터네셔널가 변주’(예서, 2022)에 ‘아 그리운 오탁번’이라는 시가 있는 것에 놀랐다.

2008년 내가 한국시인협회장으로 일할 때 국립국어원장이던 그를 만난 적이 있다. 방언시집을 낼 때 국립국어원에서 지원금 교부를 받기 위해서였다.

국어학 전공 교수로만 알았지 그가 등단한 시인이라는 것을 그때는 잘 몰랐다. 그의 시집에 ‘오탁번’이 등장한다. 이 아니 놀랄쏘냐.”라며 17년 전 오랜 추억을 서로 교감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놀라워했다.

“까물치도록 사투리를 애껴 시에 자릴 앉히는 오탁번 시인의 요오 메칠 전에 출간한 ‘비백’ 곳곳에서 탁, 탁 맥히는 충청도 사투리. 이 어른 일부러 사투리 애끼가면서 요 모퉁이 조 모퉁이에 종자씨 모종 흐트뿌려 놓듯, 시 제목이 ‘노향림’인 시 작품 맨 끄트머리에 ‘노향림의 시를 읽으면/어뜨무러차!/짊어진 소금가마처럼/눈물이 다 나네’ 노향림 시 한 편도 안 읽었어도 고만 눈물이 따라 날라카네.”- 이상규 시‘아, 그리운 오탁번’ 부분)

시의 맨 끝부분에 나오는 “진자지미 밥 뜸 들이는 그리운 냄새에 아직 벗어나지 못한, 갈보리처럼 밟힌 마이너리티 촌티를 못 벗은 건지 안 벗는건지 매양 오탁번 시인의 시가 그래서 그립다.”

‘어뜨무러차’는 어린아이나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때 내는 소리를 나타내는 말이다. 으샤, 영차 등의 뜻인 셈이다. 이 한 마디가 시의 본질이 언어의 예술이자 우리 국어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 시인은 토착어는 중앙 집권의 공식 언어가 아니지만 현재진행형으로 사용되는 소리언어로서 존중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 그는 표준어를 보다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 서울 지역의 교양인이 아닌 다양한 지역에 수평적으로 공존하는 방언을 찾아 시어로 사용했다. 그 속에서 ‘마음의 고고학’이라는 일관된 미학을 우뚝 세운 것이다.

사용하지 않아 천천히 사라지는 고어들이나 변두리인들이 사용하던 낡은 언어를 정성을 쏟아 한 편의 시 안에 곱게 자리를 만들어 앉혀내는 시인들의 경이적인 노력들이 이어질 때 전통의 현재적 계승이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담아둔 옛 기억의 순수한 언어들을 새로운 시청각적 시언어로 탈환시키는 일은 국가기관이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이러한 문화적 변곡점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한국시인협회가 흔쾌히 동참해 준 결과다.

오탁번 회장은 국어정책 연구 지원 기관인 국립국어원의 이러한 호소어린 요청을 시인들에게 한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분이셨다. 순은빛으로 반짝이는 우리 말 토박이의 소리를 회귀의 미학으로 꽃 피워 주신 시간과 공간 언어의 필경사, 오탁번 선생을 다시 또 그리워한다.

그는 “이제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서 순금이 반짝이는 저 오로라빛 암흑으로 갔다. 독을 바른 창을 잡고 휘장을 친 수레를 몰고 그는 갔다. 아아, 희망도 절망도 없는 가을 하늘 아래 흔들리는 구절초 하나 같은”그와 나는 국립국어원장과 시인이라는 그 한 번의 만남, 그 후에도 시를 쓰거나 에세이로 기억하면서 잊지 않고 교감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