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북에서 핵으로 남쪽을 불바다를 만든다고 위협할 때 남에서는 부랴부랴 거창한 베를린 구상으로 아부를 했다. 그러면 다시 “가을 뻐꾸기 같은 수작”을 부리지 말라며 북의 김여정은 남한의 국가 원수를 “삶은 소대가리”라고 한 방 날렸다. 북에서는 묘한 가을 뻐꾸기를 불러와서 모욕을 주는데 남한의 최고 지도자는 평화를 위해 자존심을 다 버렸다. 온 국민의 자존심도 짓밟았다. 낱말의 선택은 이렇게 정치외교에서처럼 궁뚱망뚱한 언어로 쓰는 것이 아니다. “가을 뻐꾸기”에 대응하여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적장의 이마빡에 명중하면 전쟁은 끝이 난다.”며 화답한 시인이 있다.

지난 연말 세상을 떠난 오탁번 시인은 잊혀가는 우리말을 지극히 사랑했다. 동자승 같이 살던 글쟁이 오탁번이 쓴 시집 ‘두루마리’(태학사)를 읽어보면 어떻게 요렇게 야물딱지고 찰진 오래된 우리말과 변두리 방언을 잘도 이용했을까 새삼 감탄하게 된다. 그의 시 어느 언저리에도 한 푼어치 섞인 허위를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시는 순수하고 정직한 영혼의 흔적이 아닌 것이 없다. 필자와는 깊은 인연은 아니나 그가 쓴 옛 책 ‘헛똑똑이의 시 읽기’라는 책에 방언을 사랑하던 내 이름을 번듯하게 올려준 인연으로 늘 그의 문적을 헤적이고 있다.

그의 시나 소설은 모두 따뜻하면서도 진중한 맛을 갖추었기에 읽는 내내 빠져들게 된다.

그의 마지막 시집 ‘비백’에는 좁쌀처럼 흩트러진 고어와 방언들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스스로 “말 하나를 가지고 별별 오두방정을 떠는 철부지 시인이다.”라며 겸손을 부렸지만 필자가 보기엔 그는 우리말의 깊은 뿌리와 말맛을 찾아 시를 남긴 보기 드물게 당당했던 시인이다.

그의 작품 ‘노루잠’이라는 시를 읽었다. “괭이잠이라는 말은 알았지만/노루잠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깊이 들지 못하고 자주 깨는 잠/노루목, 노루발, 노루꼬리, 노루종아리/사전을 찾아보니까/예쁜 우리말이 깡충깡충 뛰논다….”이 시에 나오는 ‘노루종아리’는 말 그대로 노루의 다리 마지막 긴 마디를 뜻하는 줄 알겠지만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노루종아리’는 소반의 상다리의 마지막 부분 매끈하게 흐르는 부분, 또는 문살에서 가로 살은 성기고 세로 살만 촘촘한 부분이라고 풀이했다. 진짜 익은 우리말, 변두리에 내쳐진 말 하나를 건져내어 준 그가 ‘별별 오두방정을 뜨는 철부지 시인’일까. 우리말의 숨과 결을 이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시인이 우리 곁에 있었다. 한때 방언시가 유행한 때가 있었다. 욕지거리에 가까운 변두말로 쓴 시를 방언시라며 낯 두껍게도 방언시집이라 한 시인도 있었다. 시가 가지고 있는 예민한 현을 연주하기도 전에 다 터뜨려버린 그런 시들은 진정한 우리말의 맛깔을 호도한다.

그런 면에서 오탁번 시인은 모국어의 원형을 고이 복원하기 위해 몇몇 날밤을 새우며 각고의 노력을 한 시인이다. 미궁과 같은 자리에 방언을 꼭 집어넣어 살짝 깔아 놓으면 시가 낯설어지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고단위 영양제 역할을 한다.

그가 쓴 ‘겨우살이’라는 시를 들쳐보자. “쥐코밥상 앞에서/아점 몇 술 뜨다가 만다/저녁은 제대로 먹으려고/밥집 찾아 들랑날랑하지만 늙정이 입맛에 영 아니다/다 버리고 고향을 찾아왔는데/입은 서울을 못 잊었나 보다/야젓하게 살고 싶지만/뭘 먹어야 살든 말든 하지//강풍경보가 발령된 겨울밤/몰아치는 눈보라에/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요란하다/다 낡은 분교사택/지붕도 몽땅 날아가겠다/낙향하여 선비처럼 산다고?/그래 잘 살아라/쌤통!/잘코사니”.

그가 이 시를 쓴 이유는 바로 ‘잘코사니’(고소하게 여겨지는 일·주로 미운 사람이 불행을 당한 경우에 하는 말이다.)라는 낱말 때문이다.

‘쥐코밥상’, ‘아점’, ‘야젓하게’와 같은 지난 결의 사라져가는 언어들도 절묘한 빛을 발휘한다.

오탁번 시인이 정년을 하고 고향 제천 산골마을에 문학관을 세워 겨울을 보내는 전경이 눈에 훤하게 들어온다.

서사적으로 기상천외하게 계급과 이념의 극단을 늘 끌어들여 당혹스럽게 했던 창비와 같은 이념의 문풍시대에도 고결하게 글쓰기 명줄을 놓지 않은 살가운 글쟁이 오탁번 시인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