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지난 수요일부터 등이 독한 벌레에 물린 것처럼 아파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말 벌레에 물린 줄 알았다. 빈대가 새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뉴스의 기억이 오래되지 않았다. 지구 온난화라니, 사람들 모르는 벌레가 상륙할 수도 있었다.

피부과에 가야 하지만 여유가 없었다. 설날 연휴, 돌아가신 지 일 년 되신 아버지 기일, 미뤄 두었던 만남들, 밀린 논문, 비평의 원고들. 무엇보다 금요일 날 학술대회가 있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학술대회를 잘 마치고 보자는 심산이었다.

금요일이 오자 새벽부터 일찍 집을 나섰다. 여러 손님들을 초빙한 대회였다. 오전에는 드크레센조라고, 프랑스 마르세이유 대학의 한국학 전공 교수 분이 발표를 하기로 했다. 창원의 시낭송대회 때 이 분 발표가 참 경청할 만했다. 국립국어원 원장으로 가신 장소원 선생님도 모처럼 학교에 오셔서 발표해 주신다. 오후에는, 국회의원 김종민, 우리 과 선배인데다 내게는 동아리 선배이기도 하다. 바깥의 시국이 어지럽기는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3.0’ 시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해주기로 했다. 언론에게 알리지 않는 비공식 초청이다. 영국 추리소설가협회던가에서 수여하는 대거상 번역소설 부분의 수상자 윤고은 작가가 와주기로도 했다. 마지막, 김남일 작가, 내가 1994년 등단해서 알게 된 작가 가운데 이렇게나 솔직, 소박, 성실한 사람이 있을까 싶은 선배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그린 오수연 선배의 ‘황금지붕’을 가지고 발표를 해주기로 했다.

그밖에도 발표자가 많았다. 이번 학술대회는 특별히 통상적인 학계의 범위를 넘어서는 사람들을 초청해서 ‘한국 어문학의 미래’를 주제로 삼아 이야기하기로 했다. 특별히 ‘미래소설’들을 다룬 세션을 둔 것도 이제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화두로 삼아 보자는 취지에서였다.

일요일인 오늘 결국 대상포진으로 판명이 났다. 침인지 칼인지로 등을 쿡쿡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을 견디며 가급적 맨 앞자리를 지키려고 했다. 여러 생각이 났다.

스무 해 가까이 어떤 과제의식에 쫓기듯 살아온 것이었다. 정체성은 자유이지만 구속이기도 하다고 밀었다. 그래도 뭔가 이뤄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긴 시간이었다. 어렵게 ‘BK21’ 지원 프로그램을 따냈지만, 중간평가에서 밀렸다. 앞으로 어떻게 문제를 풀어갈 것인가? 돈이 없으면 움직이기도 어려운 오늘의 연구 환경이다.

한국학 연구는 나의 터전이고, 내가 아무리 창작에 관심이 있다 해도, 떠날 수도 없고 버려서도 안되는 터전이다. 그리고 이제 막 포스트 콜로니얼조차 벗어나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게 된 참이다.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착잡한 심중에서 한 가지 생각이 인다. 이제는 나 개인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는. 연구팀이다, 학회다, 를 넘어 홀가분한 상태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든, 글쓰기든 해야 할 때라는 것.

그러고 보면 놓치는 것은 얻는 것일 수도 있다. 좋은 일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듯, 나쁜 일도 모든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