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세대를 포위했었다. 지난 대선을 이긴 보수여권이 청년의 표를 끌어모았다. 기존 60대 이상과 신규 30대 미만 유권자의 마음을 사는 데 성공했다.

청년들의 표심은 이념이 기준이었을까. 그렇지 않아 보였다. 실용에 뿌리를 두고 현실에 밝은 젊은이들의 시선을 살펴야 했다. 가르치려 하기보다 배워야 했고, 말하려 하기보다 들어야 했다. 젊은이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골칫거리로 생각하지 말고 한 세대의 성난 몸부림으로 해석해야 했다. 진보도 보수만큼이나 기득권력이 되어버린 이상 새롭게 나타난 경보가 아니었을까. 다시 생각하라는 경고장이며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독촉장이었다. 트럼프가 다시 대세가 됐다는데, 우리 보수는 잘하고 있었는지. 미국의 인종갈등이야 경계선이 분명하지만, 한국에서 세대차이는 구분선이 모호하다. 표심으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 우리 청년들은 그만큼 절박했던 터였다.

혜안과 통찰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빛나는 법이다. 명철과 지혜도 위기를 만나야 번득인다. 케케묵은 이념을 고집하기보다 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용으로 나서야 한다. 이론보다 현실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어야 하고 하루하루의 삶에 보탬이 되는 결정이어야 한다. 젊은 세대가 일상으로부터 용기를 회복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꿈과 용기만 있어도 회복과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줘야 한다. 세상만 바뀐 게 아니었다. 사람이 더 많이 바뀌었다. 그들이 당신을 지지하려면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생각해야 한다. 갈등과 혐오가 들끓는 세상에 ‘청년’이 열쇠로 등장하였다. 이번에는 누가 젊은이의 마음을 획득할 터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가벼운 구호로는 부족하다. 진심이 통해야 하고 진정이 보여야 한다. 성과가 있어야 하고 생활이 나아져야 한다. 기대만 높일 게 아니라 실질로 승부해야 했다. 정권을 심판한다는 총선의 표심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떠올랐던 청년들의 마음이 이번에는 누구를 지지하게 될까. 실용이 가라앉고 이념이 떠오르는 외침은 공허할 뿐이다. 과거에 혹 껍데기와 겉치레가 통했다면 미래로 건너가는 다리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혀야 한다. 모호한 외침은 수명을 다했으며, 분명한 길이 느껴져야 한다. 세대는 흐른다. 어제의 60대가 아니고 과거의 20대가 아니다. 결정의 방향이 다른지 몰라도, 모든 세대는 똑똑하고 현명한 방향으로 움직여 간다. 거짓말과 현수막에 쉽게 현혹될 국민이 이제는 없다.

정치가 달라져야 한다. 선거판도 바뀌어야 한다. 민심을 따라가려면 아직도 멀었다. 국민은 저 앞에서 달리는데 정치는 구태만 반복하는 모습이 아닌가. 국민의 갈급함이 어디에 있는지, 청년의 절박함이 무엇에 달렸는지 헤아리고 살펴야 한다. 낡은 이념과 해묵은 지방색은 벗어야 하고, 새로운 세대와 변화하는 시대의 표심을 획득해야 한다.

청년은 오늘도 지켜보고 있다. 한 번은 몰라도 연거푸 속일 수 없다. 진심으로 겨루고 실질로 승부해야 한다. 젊은이의 표심이 궁금해진다.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