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전통 지연 명인 황의습

“처음 연을 만난 게 1981년이니 햇수로 벌써 43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때 세계적인 석학인 일본인이 쓴 책을 읽었는데 그는 21세기는 문화가 국가의 경쟁력이 될 것이며, 국가와 민족의 고유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성장하는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했어요. 그런 점에서 한국은 일본의 문화적인 은혜의 나라이고, 스승의 나라라고 표현했더군요. 그 말에 큰 감화를 받았고,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찾던 중 지연(紙鳶)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황의습(68) 한국전통 지연 명인은 그 후 평소 관심을 뒀던 연에 관련된 고문헌 연구와 제작을 통해 활성화와 보급에 힘써왔다. 연간 300∼400개의 연을 만들어 개인전시회나 한국전통문화예술연합회의 전시회에도 참여한다. 뿐만 아니다. 법무부 교정자문위원장으로서 교도소 수형자들의 교화를 위한 봉사를 하며,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산학협력 교수로도 재직하면서 강의를 한다. 최근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가 있는 묘골마을로 이사해 새 둥지를 튼 그를 어렵게 만났다.

 

年 300~400개 연 만들어 전시회 열어

전통 색채 짙은 ‘호랑나비 태극방패연’

예술성 인정받아 ‘전통지연 1호 명인’

대구시 첫 무형문화재 등재가 목표

-(사)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홈페이지 명인명부를 검색해 봤다. 직함과 역할이 다양하시더라.

△공예 부문의 전통지연장이다. 달구벌 지연기능보유자다.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산학협력 교수, (사)한국청소년지도자협회장, (사)세계문인협회 이사 겸 대구지회장, 한국전통문화연구회장, 교정복지시설 보은의집 원장, 법무부 교정자문위원장, 대구광역시 학교폭력대책위원회 위원 등이다. 지연을 만드는 것은 본업이요, 그 외의 일은 봉사다. 우연히 교도소에 있는 친구를 면회갔다가 수형자들의 생활을 알게 되면서 그들을 돕고자 한 게 30년 이상이 되었고 제2의 직업같이 되었다. 2019년 전통지연 명인이 되면서 많이 바빠졌다. 교도소 활동을 줄이고 보은의집만 운영하고 있다. 무연고 출소자들이 머물 수 있는 보은의집은 형량을 마치고 사회에 나온 이들을 잠시 머물게 해주는 곳이다.

-우리나라 전통연의 역사가 깊고 오래됐다고 알고 있다.

△기록에 나타난 연의 역사는 신라시대이다. 선덕여왕 때 비담 등이 반란을 일으켰다. 하늘에서 떨어진 혜성을 보고 그들이 승리를 예단할 때 김유신이 연에다가 불을 안은 허수아비를 달아 하늘로 띄웠다는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그 후 군사적인 목적으로 고려의 최영 장군과 조선의 이순신 장군도 연을 사용했다. 그 후 연날리기는 세시풍속화되어 명절의 놀이가 되었으나 지금은 그마저도 단절될 위기에 있다.

-연의 종류가 많다.

△그 종류도 100여 종을 헤아릴 수 있으며 이들은 대개 두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 하나는 한국 연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직사각형 중앙에 방구멍이 뚫려 있는 것으로, 연면에 붙이는 종이의 색과 모양에 따라 또는 그림에 따라 명칭을 달리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연의 생긴 모양, 즉 외형에 따라 그 이름을 붙인 것이 있다. 형태적 분류에 따라 호랑나비 태극방패연과 송액영복 가오리연, 호랑나비 줄연과 같은 창작연이 있고, 문양적 분류에 따라 꼭지연과 반달연, 치마연, 동이연, 초연, 박이연, 발연, 방패연이 있다.

 

황의습 명인 연날리기 시연.
황의습 명인 연날리기 시연.

-주로 어떤 연을 자주 만드는지.

△거의 대부분의 연을 만든다. 그 중 예술성을 인정받은 연은 한국의 전통적 색채가 짙게 드러나는 ‘호랑나비 태극방패연’이다. 방패연에 태극문양과 호랑나비를 그려 넣은 작품인데, 이 오방색을 갖춘 호랑나비와 우주로 음양의 조화를 이룬 연을 만들어서 한국예술문화 전통지연 1호의 명인으로 인정받았다.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태극문양은 토속적 무속신앙과 관련된 우리 민속 문화와 뿌리 깊게 연결되어있다. 또한 연은 하늘을 날아오르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 놀이 도구로 호랑나비를 그려 더욱 그 상징성을 고조하고 있다. 나비는 아름다운 빛깔과 문양으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친숙한 감정을 느끼게 하며 꽃을 좋아하는 습성으로 인해 작품의 소재로 많이 사용되어져 왔다. 이 연 하나 만드는데 보통 열흘에서 보름 정도 걸린다.

-겨울 명절에 주로 날리는 연의 의미는?

△연은 1년의 무사고를 비는 액막이나 풍요의 기원과 복을 불러들이는 기복의 의미를 담기도 한다. 매년 정월 초하루부터 연놀이를 하다 열나흗날 밤에 액막이연을 띄우는데, 연에 ‘액(厄)’자를 쓰거나 주소와 성명, 생년월일, 혹은 송액의 한시를 쓰기도 하고, 동전이나 솜뭉치를 매달아서 불을 붙여 띄워 나쁜 액을 날려 보내며 한해의 풍요를 빌었다. 이는 보름의 달집태우기와 같은 맥락이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끊임없이 외세의 침입에 시달리면서도 연놀이 같은 민속놀이로 복을 빌 줄 아는 낭만을 간직하고 있었다.

-최근 육신사가 있는 묘골로 이사했다고 들었다.

△이곳이 조선의 충신인 사육신을 모신 곳이고, 박팽년 선생의 후손인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여기에 살고 싶어 애를 썼는데 마침 운이 맞아 오게 되었다. 집 이름을 람취헌(攬翠軒)이라 짓고 최근 현판식도 했다. 이곳에서 대구의 전통문화예술인들의 모임도 자주 하고 한국인성예절교육원의 학생들 교육 프로그램의 장으로도 제공하고 교육도 할 예정이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이 있다면.

△우리 한국 전통지연을 계승 발전시켜서 모든 국민과 남녀노소가 다 전통놀이를 잊지 않고 국가적 행사로도 연날리기가 자주 사용되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전통지연무형문화재가 되는 것이다. 나의 스승도 서울시 무형문화재고 동료들도 부산과 대전 등지에서 무형문화재로 등재되었다. 대구에는 아직 무형문화재가 없다. 지연을 연구하고 개발해서 대구시 무형문화재가 되고 싶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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