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필자는 포스텍 명예교수회(APPE·Association of Postech Professors Emeriti) 사무총장으로 매년 쏟아져 나오는 명예교수들을 APPE에 가입시키고 명예교수회의 행사를 진행하는 일을 하고 있다.

65세 기준으로 강제 퇴임 당하는(?) 교수들을 매년 수십명씩 보고 있고 그 인원은 이제 100명을 넘어 200명을 향해 가고 있다.

필자도 포스텍을 정년퇴임하고 타 대학 특임 교수를 하고 있고 일부 교수들이 계속 전문성을 유지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요즘 퇴직 교수나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직종들은 65세가 넘어도 모두 여러 가지 형태로 일을 계속 하고 있거나 계속 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강하다.

그러나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교수들은 그 아까운 지식과 지혜가 사회나 교육계를 위해 사용되지 못하고 사장되고 있는게 안타까울 때가 많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 많은 서구 국가들은 강제퇴임 규정이 없다. 종신직(Tenure·테뉴어)을 받은 교수들은 본인이 원할 때까지 대학교수를 계속 하면서 가르치고 연구를 계속할 수 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을 최근 방문했을 때 거의 40년 전 필자를 가르쳐준 스승들이 아직도 80대 나이에 가르치고 연구를 활발히 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러한 활동은 그들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었고 전문성은 여전히 대단한 수준이었다. 퇴임 교수들이 캠퍼스에서 고별 강연을 하고 퇴임식을 하고 몸은 떠나지만 대학을 마음에서 떠나 보내는 교수는 없을 것 같다.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연수회에 초대되어서 강연할 기회가 있으면 항상 현직 후배 교수들과 어울리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이 생각하는 학교, 학과발전에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여주었다.

내 마음의 소리는 “아직 나는 시니어가 아니다. 나는 현역이다”라는 마음이었다. 대부분의 은퇴교수들의 마음은 현역일 것이다. 이제 캠퍼스를 떠나 바깥사회로 나가는 교수들의 아쉬운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어제는 봄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특별한 볼일 없이 학교에 들렀다. 왠지 ‘교수로서 마지막 날을 학교에서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라는 생각 때문인가? 공식적인 정년퇴임식을 갖고, 곧 바로 연구실을 정리했다.

후배 교수들과 연구실 제자들이 마련한 고별강연을 마치고 오늘부터 진정한 백수(?)가 되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지난 세월 석박사 제자들이 함께 지냈던 학생연구실을 둘러보았다”

퇴임 교수들에게 마지막 학기, 마지막 강의, 마지막 지도학생 등 ‘마지막’이란 단어는 만감을 교차케 한다. ‘고별강연’이라는 행사가 있다.

그 교수가 전공한 분야에 대한 마지막 강연을 캠퍼스에서 학생, 교수, 직원들을 상대로 하는 강연이다.

대부분 전공강연으로 끝나지 못한다. 걸어온 인생을 반추하는 시간은 그 전공분야의 흥망성쇠 와 결을 같이 한다. 그들의 눈가는 젖고 희끗희끗한 머리는 강연을 듣는 제자들의 검은 머리위에 내리비춘다. 만감이 교차한다.

“언제나 삶은 서툴 수밖에 없다. 교수생활도 항상 서툴다. 좀 더 마음과 감성과 지식을 새롭게 성장시키려 했던 나날인 듯하다. 알게 모르게 함께 한 사람들을 기쁘게도 했겠지만, 또한 알게 모르게 많은 실수를 하고, 사람들을 섭섭하게도 했을 것이다. 그동안 수없이 많았을 저의 서툰 삶을 관대하게 포용해 주시길 기원해 본다”

이런 퇴임사를 할 때 사실 그 은퇴교수의 마음은 어떨까?

떠나면서 강의실, 실험실, 책상, 걸상 그리고 캠퍼스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그들을 보면서 왜 이들이 여전히 연구와 교육의 열정을 갖고 있는데 이런 아쉬운 마음으로 떠나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포스텍 캠퍼스에는 길마다 길이름 표지판이 있다. 학생회관에는 만국기가 휘날린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길을 걸으며 그리고 세계적 인재를 꿈꾸는 새내기 인재를 만날 때마다 그 표지판과 만국기를 걸던 순간이 떠오른다.

아직도 은퇴한 시니어 교수들의 애교심과 연구 교육에의 정열은 주니어 교수들 아니 그 누구보다 강렬하다.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을 위해 애쓰는, 그래서 지혜를 사회와 국가 발전을 위해 오늘도 시니어 아니 시너이 교수들, 은퇴 교수들은 뛰고 싶다.

이제 시니어는 사회와 국가발전을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세대로 자리잡고 있다. 교수의 정년과 강제 퇴임은 이제 손을 봐야 할 때가 왔다. 과거 교수가 철밥통일 때와는 달리 이제 교수들은 연구를 통해 생존하고 있다.

그 연구자들이 일시에 연구실과 장비를 반납하고 길거리에 내 앉는 교수강제 퇴임은 전면 재고되어야 한다. 100세 시대의 65세 은퇴는 한창 연구와 교육에 완숙한 경지에 들어서는 시니어 교수들에게는 맞지 않는 제도이다.

필자도 특임 교수로 있는 대학에서 포스텍 보다 더 좋은 강의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대에서 포스텍으로 그리고 울산대로 옮겨간 70학번 전국대학 예비고사 수석의 한 교수가 생각난다. 아마도 그와 같은 교수들에게는 정년퇴임은 영원히 필요없는 제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