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 포항 계원리 용송 노거수

계원리 용송은 마을의 평화와 풍어를 기원하는 수호신이다.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포항 계원리는 대숲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아담한 항구마을이다. 520살 용송 노거수가 응회암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리고 마을 터줏대감으로 살아가고 있다기에 선바람에 찾아 나섰다. 괭이갈매기는 항구 뱃머리에 앉아 따스한 햇살에 날개를 말리고, 늙은 어부부부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따고 있는 풍경이 참으로 정겹다. 그때 한 점의 바닷바람이 일어 한낮의 정적을 깨고 뱃머리 태극기가 펄럭인다. 괭이갈매기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탐하고 물고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파닥인다. 어부가 손에 든 빨간 고무대야는 시나브로 물고기로 가득 찼다.

 

마을 수호신·당산목으로 제사 대상
온 몸에 두른 금줄서 경외감 느껴져

바다 굽어보며 어민들 안전 살피고
거친 풍랑에 희생된 영혼들 위로
늘 마을을 하나로 묶어주는 구심점

어부 곁에서 물고기를 구경하던 아이들이 저 멀리 할머니의 고함에 쏜살같이 방파제로 달려간다. 할머니의 낚싯대에 매달린 물고기가 공중에 날아올랐다. 방파제에 앉아 불을 피우고 냄비에 채소를 썰어 넣고 있던 아들과 며느리가 눈길을 주는가 싶더니, 대수롭지 않은 듯, 하던 일을 계속한다. 물고기 매운탕 요리를 할 모양인 것 같다. 할머니 가족의 행복한 분위기를 깨트릴 것 같아 멀찌감치 바라보다 용송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언덕 위 용송 노거수는 몸에 금줄을 두르고 있었다. 금줄은 마을 수호신 당산목으로 제사를 받는 경배의 나무이니 함부로 손대지 말라는 금지의 표시이기도 하다. 외모는 꿈틀거리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용의 모습 같아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우람한 근육질의 몸통 줄기에서 뻗은 나뭇가지는 하늘이 아닌 땅으로 향하고 있다. 그중 한 줄기의 나뭇가지는 땅에 닿다시피 자라다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함을 알아차렸는지 방향을 바꾸어 수평으로 자라고 있다. 눈이 있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 노거수에 영혼이 깃든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늘에서 여름 폭우로 마을을 물바다로 만들고, 겨울 폭설로 마을 고샅길을 메우면 주민은 난리 북새통이다. 그러나 용송 노거수는 폭우로 몸을 씻어 더욱 푸름을 자랑하고 폭설로 눈꽃을 피워 아름다운 모습을 뽐낸다. 그저 하늘에 감사하며 붉은 태양을 쳐다보면서 살아간다. 바다를 향한 산줄기 언덕 바위를 움켜잡고 꿈틀거리며 용솟음치는 늘 푸른 용송은 비천하는 청룡의 모습이다. 한 번쯤은 기도 꺾이고 시르죽을 뻔한데도 꿈틀거리며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자태는 무한한 에너지와 함께 자강의 삶을 느끼게 한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수백 년을 주민과 동고동락하며 살아가고 있는 신령한 용송 노거수는 철인이란 생각이 든다.

조선 시대 중앙 관료들 중에는 죄를 짓거나, 권력 싸움에 밀려나거나, 간신배들의 모함으로 이곳 장기로 유배와 귀양살이를 한 이들이 적지않다. 그들은 임금님이 있는 한양을 그리워하고 억울함을 글이나 시로 표현하며 소견세월 했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자신을 한탄했을지도 모른다. 눈앞에 펼쳐지는 하늘과 바다, 산은 우리 삶의 현장이며 터전이다.

 

용송 노거수와 나무를 노래한 시

용송 노거수는 포항시 남구 장기면 계원1리 110-1에 자리해 있다. 해발고도 31m, 경도 129.527951, 위도 35.870703, 수령은 520년이다. 키는 16m, 가슴 높이 둘레는 4m, 수관 폭은 14m이고, 1992년 9월 14일 보호수로 지정됐다. 아래는 노산 이은상의 시 ‘나무의 마음’이다.

나무도 사람처럼 마음이 있소/숨 쉬고 뜻도 있고 정도 있지요/만지고 쓸어주면 춤을 추지요/ 때리고 꺾으면 눈물 흘리죠//꽃피고 잎 퍼져 향기 풍기고/가지 줄기 뻗어서 그늘 지우면/온갖 새 모여들어 노래 부르고/사람들도 찾아와 쉬면 놀지요//찬 서리 눈보라 휘몰아쳐도/무서운 고난을 모두 이기고/나이테 두르며 크고 자라나/집집이 기둥 들보 되어주지요//나무는 사람 마음 알아주는데/사람은 나무 마음 왜 몰라주오/나무와 사람은 서로 도우면/금수강산 좋은 나라 빛날 것이오.

 

멀리서 바라본 용송 모습.
멀리서 바라본 용송 모습.

그러나 고마움보다 원망의 눈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하늘의 날씨가 덥다고 불만이고 춥다고 불평한다. 바다가 거칠다고 불평하고 안개가 끼었다고 불만이다. 그렇다고 하늘과 바다는 우리의 불만과 불평이나 원망을 들어주지 않는다. 용송의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면 그들의 삶이 크게 달라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촌마을에서 용왕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건 드물지 않은 일이다. 고요한 바다도 때로는 성난 파도로 돌변하여 고깃배를 침몰시키고 어부를 바다에 수장하기도 한다. 부모를 잃은 자식, 자식을 잃은 부모, 또 이들 형제자매들의 슬픔의 고통을 누가 겪어보지 않고 알 수 있을까. 파손된 고깃배야 또다시 만들면 되지만, 잃은 가족은 다시 돌아올 수 없으니 그 애통한 심정은 이루 말 수 없을 것이다. 바다는 생활의 터전이지만, 언제 또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몰라 늘 두려움의 대상이다.

사람은 죽으면 선산의 땅에 묻혀 구천에서 가족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지만, 어부가 바다 위에서 뜻밖의 재난을 당하여 죽으면, 아무도 찾아올 수 없는 바다에 묻혀 심해를 떠도는 영혼이 되고 만다. 주민들은 용송에 희생된 이들의 영혼이 용궁에서 편안한 안식과 이런 불행한 일이 앞으로 일어나지 않기를 비는 제를 올린다. 이뿐만이 아니다. 용송은 주민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구심점이며, 또한 마을의 평화와 풍어를 기원하는 수호신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고 삶에 위안이 된다면 이 또한 미신이 아니라 민속문화로 어촌 주민들의 생활 방편이다.

아주 어릴 때이다. 어머니는 나에게 태몽을 꾼 이야기를 해주었다. “밝고 둥근 보름달을 내 가슴에 품었다. 그리고 용띠의 해에 너를 낳았다. 너는 커서 보름달처럼 빛이 나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었다.

그로부터 보름달은 유난히도 크고 밝아 보였다. 하늘과 바다가 입맞춤하는 수평선에서 찬란히 빛나는 해와 달의 기운과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고 살았다. 새해 해맞이와 정월 대보름 달맞이는 평소와 같은 해와 달일지라도 느끼는 감정은 달랐다. 새해 아침 해돋이와 정월 보름달 맞이를 하면서 소원을 빌었다. 그때마다 어머니가 하신 태몽 꿈을 생각하고 꼭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 굳게 믿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걸 믿었다는 내가 우습기도 하다. 그러나 가난을 벗어던진 것만으로 절반의 성공은 거두지 않았나 싶다.

신라 문무왕은 죽어 동해의 용왕이 되어 나라 앞바다를 지키겠다고 했다. 혹여나 문무왕의 영혼이 용송으로 옮겨오지는 않았는지. 등대처럼 바다를 바라보며 어촌을 지키고 바다에 희생된 어민의 영혼을 보듬어 주는 용송 노거수! 그 푸름이 만대에 이어지리라 믿어본다. 갑진년 청룡의 해를 맞이하여 늘 푸른 용송 노거수에 가족을 위해 바다에서 물질과 고기잡이하다 희생된 어민의 영혼을 위로하고 우리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해 보면 어떨까?

/글·사진=장은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