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도시계획 아래 축성

상주읍성 정밀발굴조사 현장.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상주읍성의 성벽, 해자, 배수로, 배수시설 등의 부속시설과 통일신라시대 도로유구가 확인됐다.

(재)금오문화재연구원(원장 한도식)은 상주시 인봉동 97번지 일원의 도시계획도로 소로(1-2) 개설부지 내 매장문화재 정밀발굴조사 결과를 29일 발표했다.

문헌기록 속의 상주읍성은 1381년(고려 우왕 7년)에 축성을 시작해 1385년(고려 우왕 11년)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 및 보수가 이뤄졌으며 일제의 읍성훼철령(1910년)에 따라 헐리게 되는 1912년까지 520년 이상 상주의 행정 및 군사, 주거의 중심부로 자리매김했다.

상주읍성은 평지성으로서 1913년에 제작된 지적도를 통해 동-서방향 약 520m, 남-북방향 440m, 전체 둘레 약 1천700m로 추정된다.

조사를 실시한 (재)금오문화재연구원에 따르면, 상주읍성의 성벽은 현 지표면에서 약 10~50㎝ 아래에서 확인됐고, 일제의 읍성훼철 계획에 따라 지상의 성벽은 철거됐으나 다행스럽게 성벽의 기저부는 남아 있었다.

상주읍성은 감영, 사직단, 객사, 주창, 대동창 등의 창고시설과 풍영루, 용산루, 진남루 등의 누대(樓臺)시설을 통해 대읍(大邑)으로서의 조건을 일찍이 갖췄다.

이번 정밀발굴조사를 통해 규모, 축조방법, 수리체계 등이 밝혀지면서 상주읍성은 철저한 도시계획 아래 축성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읍성뿐만 아니라 주변경관이 지속적으로 관리돼 왔다는 것은 상주시가 고대의 대읍(大邑)으로서 중요한 거점지역이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증거자료라 할 수 있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들은 “이번 조사를 통해 상주읍성과 주변시설이 확인됐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상주지역 방리제(坊里制) 추정구획도’상에서 동-서방향의 추정선과 일치하는 통일신라시대의 방리도로도 함께 확인되면서 상주읍성뿐만 아니라 신라 통일기 지방도시구조를 알 수 있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강영석 상주시장은 “이번 정밀발굴조사를 통해 상주읍성의 국가유산적 가치를 제고하고, 현재 추진 중인 읍성 북문 복원사업에 박차를 가하겠다”며 “앞으로도 대읍(大邑) 상주의 모습이 다시 살아나는 역사도시 상주를 만들어 가는데 더욱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곽인규기자 ikkwack@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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