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서정이 가득한 강원도 정선

봄, 여름, 가을 ‘천상의 화원’으로 유명한 만항재에 눈꽃이 만발했다.

강원 정선의 겨울은 뼈대만 남은 것처럼 앙상하다. 정선을 가로지르는 동강도 반쯤은 얼어붙었다. 시리도록 푸른 물이 휘어져 돌아가는 골짜기는 드문드문 눈이 쌓여 있고 고요 속에 잠겼다. 동강과 함께 정선을 대표하는 것은 만항재, 문치재, 두문동재, 병방치, 백봉령, 자개골, 싸리골, 박달재 등 한 굽이 돌 때마다 만나는 수없이 많은 고개다. 오죽하면 정선아리랑에서 “태산준령 험한 고개 칡넝쿨 얼크러진 가시덤불 헤치고 시냇물 굽이치는 골짜기 휘돌아서”라고 했을까? 정선은 오직 꾸밈없이 순수한 것들만 자리잡은 듯하다. 순후한 자연이 그렇고, 정감 넘치는 사람들이 그렇다.

 

‘천상화원’으로 유명한 만항재엔 고즈넉한 겨울바람
병방치 스카이워크에서 내려다 보는 동강 풍경 백미
자개골·박달재 등 고갯길 이어져 드라이브 코스 인기
정선아리랑시장엔 콧등치기·메밀전병 등 향토음식

◇고원드라이브의 명소, 만항재와 문치재

해발 1330m인 함백산 만항재에 오르니 삭풍이 분다. 만항재는 국내에서 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다. 지리산 정령치(1172m)나 태백과 고한을 잇는 싸리재(1268m)보다도 높다.

만항재는 원래 눈꽃보다 ‘천상의 화원’으로 유명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로 뒤덮인다. 새벽이면 안개가 자주 몰려와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야생화부터 눈꽃까지 사시사철 꽃이 만발한 만항재로 오르는 고갯길은 고원 드라이브의 정수로 꼽힌다.

고원 드라이브의 또 다른 명소는 문치재다. 정선 읍내를 빠져나와 지그재그로 이어진 해발 732m를 오르면 전망대가 보인다. 여기부터 급경사의 내리막이 시작되는데 이 구간이 문치재다. 경남 함양의 오도재와 충북 보은 말티재, 신안군 흑산도 12굽이길과 함께 손꼽히는 고갯길이다. 문치재는 해발 1000m가 넘는 높은 산에 둘러싸인 문(門)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이야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일부러 찾는 여행지가 됐지만 가난한 시절의 문치재는 애환의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도로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길은 S자로 심하게 구불거린다. 오랜 시간 사진작가들의 촬영지로만 알려져 있다가 최근에는 롱보드 성지로 유명해졌다. 문치재는 도로 폭이 좁아 중간에 차를 세워둘 곳이 마땅치 않다. 한 번 진입하면 고갯길이 끝나는 무내리까지 갔다가 돌아와야 한다.

문치재를 넘으면 화암동굴·몰운대 등 화암팔경(畵岩八景)의 절경이 잇달아 펼쳐진다. 100년이 넘은 백전리 물레방아도 이 길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정선읍 북실리에도 또 다른 고개가 있다. 해발 583m인 병방치에 오르면 일명 ‘뼝대’로 불리는 경이로운 기암절벽, 한반도 지도를 닮은 밤섬을 휘감아 도는 동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밤섬과 동강의 풍경을 제대로 즐기려면 병방치 스카이워크를 걸어야 한다. 절벽 끝에 U자형으로 돌출된 길이 11m의 구조물 바닥에 강화유리를 깔아 마치 하늘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병방치스카이워크.
병방치스카이워크.

◇콧등치기·수수부꾸미 등 향토 먹거리 가득

병방치에서 읍내 쪽으로 나오면 대표적 전통시장인 정선아리랑시장을 만나게 된다. 끝자리 2일과 7일에 열린다. 정선 군민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사람이 몰려든다. 1966년 2월에 처음 개장했는데 시골 장터로 시작은 작았다. 석탄이 번성했던 시기에 가장 큰 인기를 누렸다가 석탄 산업이 쇠퇴하면서 함께 침체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다 1999년 정선 5일장 관광열차가 유명해지며 부활했다.

정선 5일장에서는 모든 것이 신토불이다. 강원도에서 나는 각종 산나물과 약초가 지천이고 농가에서 직접 재배한 감자, 황기, 더덕, 마늘 같은 농산물이 주종을 이룬다. 방문객도 대부분 싱싱한 약초와 채소를 구하기 위해 온다고 한다.

시장 어귀에 들어서니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가마솥 뚜껑같이 생긴 번철에 하얀 전을 부치고 있다. 종잇장처럼 얇게 편 반죽이 금세 익으면 그 위에 김치, 갓김치, 무채 등으로 버무린 소를 넣고 돌돌 만 메밀전병인데, 정선 주전부리의 대표 선수다. 메밀부치기는 메밀 반죽에 배춧잎을 올려부친다. 밀가루 반죽으로 부치는 경상도식 배추전과 비슷하다. 심심해 보이지만 막상 먹어보면 달큰한 배추 맛이 매력적이다. 수수한 음식 속에 정선의 향기가 느껴졌다.

쌉싸래한 맛이 일품인 곤드레나물을 듬뿍 넣어 만든 곤드레밥 한 그릇 뚝딱하고 막걸리 한 잔에 메밀전병, 배추전까지 한 점 하면 든든하다. 묵사발에 콧등치기, 올챙이국수, 수수부꾸미도 빠지면 아쉬우니 먹기만 하다가 해가 질 수도 있다.
 

볼거리도 많은데 장이 서는 날이면 신명 나는 공연과 함께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가 다양하다. 정선아리랑의 고장인 만큼 아리랑과 연관된 시설과 공연도 여럿이다. 방문하기 전 정선아리랑문화재단에 확인해서 어떤 볼거리가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좋다.

정선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웰니스 관광도시다. 여행으로 왔다가 몸과 마음의 쉼도 얻고 갈 수 있는 고장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세 곳이 추천 포인트인데 가리왕산 화봉에 있는 로미지안 가든이 먼저다. 화학 제조업을 하던 손진익 회장이 부인을 위해 조성한 정원이다. 33만㎡의 넓은 공간에 23개의 테마로 4시간 이상 트레킹과 명상, 쉼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 바쁜 도시민에게 오롯한 쉼과 함께 자연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도록 치유와 성찰을 테마로 운영하고 있다. 가족이나 연인의 방문이 많지만 혼자 찾아와 조용히 사색하며 머물기에도 좋다. 사계절 고요하고 수려한 풍경에 맞게 다양한 공연과 이벤트도 열리니 방문 전 확인은 필수다.

하이원과 파크로쉬 리조트의 웰니스 프로그램이다. 카지노로 잘 알려진 하이원리조트에는 포근한 숲길과 함께 웰니스센터를 운영하고 있어 투숙객은 물론 방문객에게 쉼을 선물한다. 차분히 숲길을 따라 산책하다 보면 웰니스센터 건물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요가·명상, 조향 테라피, 차 클래스 등이 열린다. 일상에서 굳은 몸을 이완하기도 하고 안정을 더하는 향을 조합해 내게 맞는 향수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몸에 좋은 차를 골라 나만의 차를 시음해 보는 것도 좋다. 지금은 겨울 별자리를 찾는 교감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삼탄아트마인.
삼탄아트마인.

♠TIP 함께 가볼 만한 곳…삼탄아트마인

‘굽이굽이 732m 내려다보니 우리네 삶이었네.’

함백산 자락의 삼척탄좌는 1970년대 탄광촌으로 전성기를 누린 석탄산업의 메카였다. 2001년 폐광된 뒤 2013년 복합문화예술공간인 삼탄아트마인으로 재탄생했다. 갤러리와 역사관, 스튜디오, 예술체험관, 레스토랑 등 다양한 볼거리를 갖췄다. 광부들의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 문화를 캐는 탄광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정선=글·사진 최병일 여행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