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대한 추위가 매섭다. 지난 며칠은 겨울답지 않게 겨울비까지 내려 포근한가 싶더니 어제오늘은 제법 춥다. 이럴 땐 집안에만 있고 밖엘 나가지 말아야 한다. 나이 들어선 더욱 그렇다. 주말 이틀을 집안에서 단 한 걸음도 나가지 않은 채 틀어박혀 지냈다. 그러다 문득 모두의 집이 걱정되었다. 그 동네 묘골의 집들은 모두 한옥이다. 외관으로는 한옥고택이지만 엔간한 집들은 겨우살이를 위한 채비를 해 두었다. 툇마루나 큰 마루에도 나무나 유리로 된 문을 달아내었다. 겨울 냉기와 바람을 적당히 막아야 실제 거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옥의 미관을 크게 해치지 않은 선에서 한 장치다. 그러나 우리 집은 겨울바람과 추위에 온전히 노출된 집이다. 온전히 옛집 그대로의 모습을 훼손하고 싶지 않았다. 겨울 지낼 요량으로 방안에 커튼을 달거나 비닐막이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작년 겨울, 모두의 집에서 몇 번 잔 적이 있었다. 바깥에서 씽씽 바람소리 들렸으나 방바닥이 따뜻하니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러나 4중으로 된 문의 틈새로도 칼바람이 들었다. 바늘구멍으로 든 황소바람을 실감했다. 보일러의 온도를 최대로 높여 방바닥은 뜨거운 데도 코끝은 시렸다. 이불을 함부로 차대는 어린 손주들 챙기느라 밤새 잠을 설쳤다. 그곳에서 자고 오면 애들은 어김없이 감기에 들어 고생했다. 올핸 아예 갈 생각이 없었다. 겨울 석 달은 없는 집 삼으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세와 수도세는 더 많이 나오고, 보일러의 기름은 수시로 점검해야 할 정도로 많이 쓴다. 혹시 수도가 얼지나 않을까 염려되어 약하게 물을 틀어 두었다. 화장실엔 동파를 막으려 라디에이터를 켜두고 방안의 냉기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려 보일러도 틀어두어야 한다.

예전 어렸을 적 외갓집의 겨울이 생각난다. 오래된 고택이었다. 아궁이에 잔뜩 군불을 넣고 방엔 이불을 넓게 깔아 온기를 가두었다. 아궁이의 숯을 가득 담은 청동화로를 방 한쪽에 두고 방안을 덥혔다. 그 화로에 밤을 구워먹었다. 외할아버지께서 고방에서 내주신 꽁꽁 언 홍시도 화롯전엔 얹어 녹여 먹었다. 화로의 불씨가 거의 꺼질 때면 멀리 머리맡으로 밀쳐두고 두꺼운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덮고 잤다. 방바닥은 발이 닿으면 뜨겁지만 머리맡의 자리끼에 살얼음이 끼고, 코끝은 시렸던 겨울밤이었다. 아랫목의 온기가 가실 무렵, 새벽이면 외할머니는 군불을 다시 한 번 넣으셨다. 제일 큰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화장실은 밤엔 혼자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곳이었다. 곤히 주무시는 외할머니를 깨웠다. 촛불을 켜 든 외할머니를 앞세워 화장실엘 갔다. 외할머니는 노래를 부르거나 이야기를 하면서 추위와 무서움에 떠는 나를 안심시켜 주셨다. 그 날 후론 방 밖 툇마루에 요강을 갖다 두셨다. 무서움은 덜했으나 한기는 여전했다. 주방과 화장실이 실내에 있는 우리의 한옥은 그에 비하면 얼마나 편리한가. 뜨거운 방바닥에 코끝 쨍하게 시린 추억이 아련하긴 해도 아파트의 안락함에 길들어진 나에겐 한옥의 겨우살이가 두렵고 버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