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 시인.

청록파(靑鹿派)는 1939~1940년 잡지 ‘문장’지의 추천으로 시단에 등장한 시인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세 사람을 말한다. 청록파는 해방 이후 1946년에 간행된 이들 세 사람이 각자의 시들을 모아서 낸 시집‘청록집’에서 유래되었는데, 청록파는 우리나라 서정시의 산맥을 우뚝 세웠다. 세 시인은 우리말의 특징을 잘 살려 자연을 소재로 자연의 심성과 순수한 인간성을 표현한다는 공통점을 가지되 각각의 개성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 조지훈은 전통에 대한 향수를, 박두진은 자연을 통한 구원과 치유를, 박목월은 자연의 풍경을 묘사하거나 그 안에서 살아가는 향토적인 정서를 표현한다고 얘기한다. 이들 셋 중 가장 자연에 가까운 이는 박목월이다. ‘청록집’이라는 시집 이름도 사실 박목월의 시 ‘청노루’에서 따온 것이다. 정지용이 ‘문장’지에 박목월을 추천하면서 “북에는 소월이 있었거니 남에는 박목월이라 할 만하다.”며 목월의 시를 한국시의 전형이라고 극찬했다.

청록파의 세 시인에게는 경상도라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박목월은 경북 경주 출신이고, 조지훈은 경북 영양 사람이다. 박두진은 경기도 출생이지만 한때 경주와 밀양에서 유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럼에도 경상도 방언을 즐겨 시어로 채택한 이는 단연 박목월이다. 방언을 시어로 채택해 맛깔난 시를 쓴 시인으로는 경상도의 박목월과 전라도의 미당 서정주를 꼽는다. 목월과 미당은 경상도와 전라도라는 두 공간의 토박이 방언으로 고향의 토속성을 아름답게 되살려 성공한 시인들이다. 미당의 시는 다음 기회에 소개하겠다.

박목월은 유독 많은 방언 어휘나 방언 어법을 사용하고 있다. 억센 경상도식 사투리의 악센트가 텍스트 바깥으로 튕겨 나오는 듯하다. 문자가 없었던 시대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며 외치던 소리가 시가 되었듯 박목월의 시편에서 들리는 사투리는 경상도 사람의 말소리 그대로다. 애틋한 그리움이나 한의 정취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시인의 의도임이 분명하다. 박목월은 방언을 시 작품에 적절히 끼얹어 경상도식 탁성인 토박이 방언으로 고향의 토속적 정경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아배요 아배요/내 눈이 티눈인 걸/아배도 알지러요./등잔불도 없는 제상에/축문이 당한기요./눌러눌러/소금에 밥이나 많이 묵고 가이소./윤사월 보릿고개/아배도 알지러요./간고등어 한손이믄/아배 소원 풀어드리련만/저승길 배고플라요/소금에 밥이나마 많이 묵고묵고 가이소./니 정성이 엄첩다./이승 저승 다 다녀도/인정보다 귀한 것 있을락꼬,/망령도 감응하여, 되돌아가는 저승길에/니 정성 느껴느껴 세상에는 굵은 밤이슬이 온다.” -‘만술 아비의 축문’

슬픈 서사 ‘만술 아비의 축문’은 가난하고 글눈 먼 기층민들의 삶을 향토적인 언어의 색조로 절절하게 노래한다. 거친 방언의 언어문법으로 직조해 내어 울림도가 더 크다. 소리내어 읽어보라. 눈앞에 펼쳐지는 부자간의 애틋한 대화에 귀 기울여 보라. 아버지 제사상 앞에 꿇어앉은 만술 아비의 슬프고 아픈 넋두리에 감응하는 죽은 ‘아배’의 대답에도 이슬 같은 눈물이 배어있다. 박목월은 변방 언어인 방언을 과감하게 시의 중심부로 끌어올림과 동시에 방언의 사용자인 민중들의 삶의 모습을 부각시켜 향토적 서정을 형상화해내고 있다.

‘내 눈이 티눈’은 ‘까막눈’, 곧 글자를 읽지 못하는 무식함을 은유하는 경상도식 속담이요, ‘엄첩다’는 ‘제법이다, 기대 이상이다.’로 풀이할 수 있는 방언인데 이 시어를 표준어로 바꾼다면 시의 극적 요소와 시적 자아의 정체성은 사라질 것이다. 방언을 절묘하게 배치한 방언시의 묘미를 박목월의 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