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희 작가
유영희 작가

지난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흉기로 습격당했다. 범인 김모씨는 작년 4월부터 범행을 준비하면서 작성한 ‘남기는 말’에 의하면, 총선에서 이 대표가 공천권을 행사하면 좌경 세력에게 국회가 넘어가고,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좌파 세력에게 넘어가게 될까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범행을 기획했다고 한다.

자기와 정치적 입장이 다르면 무찔러야 할 적이라고 생각하거나 대표 한 사람이 죽으면 자기가 원하는 세상이 올 거라는 믿음은 범인 김모씨 한 사람만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보수만 그런 것도 아니다. 김모씨와 반대되는 정치적 신념을 가진 사람은 여당 대표가 사라지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이런 비합리적인 신념을 갖는 것은 평소 한쪽 편향의 뉴스만 보기 때문이다. 김모씨는 월간조선을 32년간 구독했고 평소에도 보수 유투브를 시청했다고 한다. 그 사람뿐 아니라 너나 할 것 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한쪽 편향적인 뉴스만 보고, 나와 의견이 다른 매체를 보는 일은 극히 드물다. 많은 사람이 자기 구미에 맞는 뉴스만 편식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절대시하고 상대를 향해 적개심을 불태운다.

저술가 홍일립은, 국가 운영의 토대인 헌법과 법률에 동의하지 않았으면서도 국가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국가의 비천한 기원을 망각했거나 아니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정당하지 않은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가 국민이 무지하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말에 눈이 번쩍 뜨인다. ‘동물농장’을 쓴 조지 오웰의 관점과 아주 비슷하기 때문이다.

동물농장의 나폴레옹 돼지 일당은, 농장의 동물을 동원해 그들을 학대하는 인간 농장주를 몰아낸 후 자기들이 다른 동물을 착취한다. 나폴레옹 일당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다른 동물이 무지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동물주의를 표방하는 동물 일곱 계명을 만들고 모두에게 외우게 했을 때 말, 오리, 염소, 양 등은 암기하지 못했다. 돼지들이 일곱 계명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수정해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것을 아는 유일한 동물 당나귀 벤자민은 침묵했다.

홍일립은 이런 문제가 해결되려면 ‘사실 복원’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는 ‘국가의 딜레마-국가는 정당한가’에서 특정 정치가나 이념을 신격화하지 말고 객관적 사실을 복원하여 이성적으로 판단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민이 무지하다면, 사실을 복원하여 자기 신념의 정당성을 판단하자는 홍일립의 주장은 실현되기 어렵다. 자기가 좋아하는 뉴스만 보고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사실 복원에 힘을 보탤 수 있을지 의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홍일립은 사실 복원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도덕적 작업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동물농장은 수십 년 전 일이고, 당나귀 벤자민은 혼자였지만 지금은 신념의 정당성을 판단하려는 사람이 많아졌다. 나 또한 신념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기의 신념을 절대시하지 않고 사실 복원에 힘쓰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더디더라도 내일은 사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