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장은재의 명품 노거수와 숲
⑫ 포항 구룡포 눈먼 규화목 송덕비와 향나무 노거수

포항 구룡포엔 향나무 노거수와 규화목 송덕비가 있다.

구룡포항 언덕 위에는 일본 침탈문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조상은 그들에게 우리 선진 문물과 문화를 전하여 주었건만, 일본은 은혜를 잊고 우리의 수산물을 수탈하여 기름진 배를 채웠다. 그들이 떠나간 지 아니, 달아난 지 70년이 훌쩍 넘어섰다. 일본 핍박에 시달린 주민들의 원통하고 분한 마음을 그들이 세운 거대한 눈먼 규화목 송덕비를 보고는 짐작할 수 있다.

구룡포 주민은 규화목 송덕비 얼굴을 시멘트로 짓뭉개 눈먼 규화목 송덕비로 만들어 버렸다. 분노의 표출이 아닐까 싶다. 얼마든지 넘어뜨리고 부수어 버릴 수 있을 것인데, 남겨 놓은 것은 아픈 역사를 잊지 말고 기억하며 자강하자는 큰 뜻이 있지 않을까 싶다.

구룡포항에는 과거와 현재의 문화가 공존해 있다. 언덕 아래에는 말로만 듣던 일본풍의 집들로 들어찬 적산가옥을 보고 적이 놀랐다. 100여 년 전 일본인들이 살았던 일본식 가옥이 해방된 지 70여 년이 넘어섰지만, 아직도 500m 거리에 80여 채의 주택, 여관, 요리점 등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풍부한 우리 어족자원 수탈한 일제
日서 규화목 가져와 송덕비 세우고
향나무 아래 포탄모양 돌조각에 제사
현재에도 일제강점기 흔적 고스란히

지역민들 아픈 역사 잊지말자 뜻으로
시멘트로 짓뭉개 눈먼 규화목 송덕비
침략의 아픔겪은 은행나무·느티나무
용서·화해의 노거수 우람한 자태 뽐내

거리를 활보하는 그들의 오만한 몸짓과 요란한 나막신 소리 대신 국내외 관광객들이 이집 저집을 드나들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근대문화 역사 거리를 체험하고 있다. 그들이 남기고 간 문화유산으로부터 문화해설사는 그들의 만행을 하나하나 폭로하고 있다.

언덕 위 구룡포 공원에는 먼바다와 구룡포항을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거대한 규화목 송덕비가 세워져 있다. “일제 강점기 때 구룡포 앞바다 방파제 축조와 도로 개설 등에 공을 세운 일본인 도가와 야스브로를 기리기 위하여 일본인들이 본국에서 규화목을 가져와 1944년경에 세웠다”라고 안내문에 기록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06년 가가와현 어업단 소전조(小田組) 80여 척이 고등어 등 어류 떼를 따라 구룡포에 이주하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라고 한다. 속내는 일제 강점기에 풍부한 어족자원을 수탈하여 그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로 인하여 구룡포 주민들은 가렴주구에 시달리며 핍박과 고통에 시달렸을 것이란 생각에 미치자 억장이 무너진다. 희생된 주민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탑을 세우기는커녕 그들의 악행을 찬양하는 송덕비를 세웠다니 하늘도 통탄할 일이다.

규화목 송덕비 주위에는 그때의 실상을 낱낱이 보고 증명할 증인이 아직도 살아 있다. 향나무 노거수이다. 향나무 노거수는 이곳으로 이주하여 온 일본인이 가져다 심었을 것이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가이스카라고 하는 향나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향나무 노거수 주변에 일본인들이 전쟁터에 나가기 전 승리의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였다는 포탄 모양의 돌조각이 세워져 있다.

이 밖에도 일본 민속신앙인 신토의 신을 모시는 신사 터 초석, 신사를 참배하기 전에 손을 씻는 초우츠야가 설치되어 있다. 침략 실상을 향나무 노거수 생육 모습이 증언하고 있다. 침략자들의 억압에 시달린 주민들의 분풀이이었을까. 죄 없는 향나무가 만신창이가 된 채 목숨줄을 부지하고 살아가고 있다. 몸은 찢기고 뜯기어 흉터로 얼룩져 몰골이 말이 아니다. 분노한 주민들은 조상의 영혼 앞에 향불로 그의 몸을 죗값으로 불태우지 않았나 싶다.

이제는 그곳에 대한민국 재향군인회가 충혼탑을 세워 놓았다. 향나무 노거수는 과거의 지위를 잃고 새로운 주인인 충혼탑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잘못을 뉘우치고 참되게 살고자 새 주인인 충혼탑을 지키고 있는 향나무 노거수의 가련한 모습에 일말의 동정심이 간다. 이참에 의견을 모아 보호수라는 품계나 천연기념물이라는 더 높은 품계의 지위를 올려주면 어떨까 싶다. 이제는 용왕당, 구룡, 향나무 노거수가 다 함께 구룡포항의 평화와 풍어를 기원하고 있다.

구룡포항 언덕 위에는 향나무 외에도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노거수가 등대처럼 동해를 바라보고 있다. 은행나무는 동쪽과 서쪽의 몸 살갗이 다르다. 노란 단풍잎은 만추가 지나고 겨울의 문턱까지 떨구지 않고 끈질기게 매달고 있다.

새천년 밀레니엄 느티나무 노거수 역시 힘자랑이라도 하는 듯 우람하게 서 있다. 침략의 아픔을 경험한 노거수는 반일을 넘어 극일로 나아가고 용서와 화해로 스스로 힘을 키우는 자강을 하라는 메시지로 보였다. 구룡포항의 ‘적산가옥 거리’와 언덕 위 ‘눈먼 규화목 송덕비’를 우리의 기억에서 잊지 말도록 ‘구룡포 근대문화 역사 기억의 공원’으로 탈바꿈하면 어떨까 싶다.

나라를 되찾은 지도 벌써 한 세기가 다가오지만, 언제까지 아픈 역사의 굴레에 갇혀서 우리끼리 친일이니 반일이니 서로를 탓하며 살아야 할까. 침략자들의 속내는 국론을 갈라놓고 서로를 향해 삿대질하고 싸우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이런저런 상념에 빠졌다. 세계사적으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강대국은 약소국을 침략하여 그들의 야욕의 배를 불렸다. 중세 유럽이 그랬고 근대 산업사회에도 부국강병 정책으로 약소국은 그 희생물이 되었다.

세계 평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현대사회에서도 전쟁은 끊이지 않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가자지구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으로 어린아이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있다. 약소국의 설움일까. 강대국의 횡포일까. 마냥 이웃끼리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미래를 약속할 수는 없지 않을까. 자강의 길만이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란 생각이 든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 호랑이 꼬리에 터전을 잡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그 옛날 구룡포 주민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보인다. 밀려오고 밀려나는 바다 물결에 씻긴 황금 모래 빛 백사장에 아이들이 뛰어놀고, 풍어로 만선의 고기잡이배들이 윤슬에 물 띠를 그리며 기적을 울린다. 갈매기가 창공을 날아오르며 반긴다. 이런 평화로운 마을을 짓밟아 놓고 무슨 덕을 지었다고 칭송의 노래를 부른단 말인가. 눈먼 규화목 송덕비와 향나무 노거수는 “오욕의 역사를 잊지 말라고,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아픈 역사를 곱씹어보게 한다. 오늘 나즐로(나 홀로 즐거운) 노거수 탐방은 자강의 길이 무엇인지, 애국의 길이 무엇인지 곰곰이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었다.
 

규화목(硅化木)이 뭘까?

내부가 무기 광물로 채워져 화석화 된 ‘나무 화석’을 규화목이라 한다.

나무의 해부학적 구조가 온전히 보존된 경우는 연륜연대학으로 나무의 나이테를 분석하여 고기후와 고환경을 연구할 수 있다. 다양한 세포로 구성된 복합 조직으로 미세구조와 배열 상태를 바탕으로 나무의 종류를 구분할 수 있다.

우리나라 규화목 발견 장소는 경상북도 천연기념물 제146호 칠곡 금무봉 나무고사리 화석 산지, 포항시 금광동 신생대 규화목 화석 산지 등이 있다.

구룡포 공원에는 과메기 문화관, 생활문화관. 구룡, 충혼탑, 충혼각, 용왕당과 일본의 신사 터 초석, 쵸우츠야, 포탄 돌, 봉헌, 규화목 송덕비 등 시설물이 있다. 적산가옥 거리에는 일본 가옥과 우리 가옥이 공존해 있다.

/글·사진=장은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