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제1야당 대표가 백주대낮에 정치테러로 쓰러졌다. ‘증오의 진영정치’가 초래한 비극이다. 대결의 정치는 대화·타협·공존을 모른다. 거대 양당은 협치의 대상을 섬멸해야 할 적으로 간주해서 ‘전쟁 같은 정치’를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모르는 양당의 주특기는 ‘내로남불’이다. 국민은 말뿐이고 권력에만 혈안이니 양당에 실망한 중도·무당층의 비율이 역대급이다.

그럼에도 양당은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은 총선을 앞두고 분출하는 제3지대 신당들에 관심이 간다. 최근 여론조사(리얼미터, 2023년 12월 18일)는 국민의 48.3%(무당층은 68.3%)가 제3지대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했다. 중도·무당층을 겨냥한 신당들은 ‘합리적 진보’ 또는 ‘개혁적 보수’를 표방하고 있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새 정치를 펴겠다는 포부도 크다. 하지만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제3지대 신당이 성공하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3지대의 ‘철학과 비전’이다.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한 신당인가?”에 분명히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신당은 거대 양당에 대한 불신과 혐오에만 기대서는 안 되며, 차별화된 가치와 비전으로 대안세력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은 ‘새로운 당’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당은 양당체제의 폐해를 극복하고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새 정치의 지향점과 비전’을 확실히 제시해야 한다.

다음으로 신당의 정치성향(political orientation)은 합리적·이성적·실용적이어야 한다. 이것은 진영정치를 거부하는 민주시민들의 열망일 뿐만 아니라, 신당의 지지기반이 되고 있는 중도·무당층의 요구이기도 하다. 신당은 ‘사익을 위한 정쟁’이 아니라 ‘공익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하며, 상대를 ‘척결의 대상’이 아니라 ‘협치의 대상’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정치성향은 당내민주주의를 가능케 함으로써 합리적 정책 선택을 제고함은 물론이다.

한편 신당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장기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번 총선만 의식한 기회주의적 접근으로는 유권자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신뢰는 말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행동의 누적된 결과물’이다. 거대 양당의 혐오에 기대어 당장 성과를 보겠다는 과욕은 곤란하다. 비록 이번 총선에서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일관된 철학과 행동으로 긴 호흡을 한다면 반드시 국민의 호응을 얻게 될 것이다.

이처럼 제3지대 신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철학, 합리적 성향, 장기적 관점에서 양당체제의 압력을 돌파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난관은 많겠지만 성공이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는 현재의 양당체제’에서는 팬덤정치·극한대결·민심왜곡·포퓰리즘·내로남불 등의 수많은 병폐들이 무한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3지대 신당의 성공은 참여 정치인들의 철학·성향·행태에 대한 국민의 공감여부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