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장은재의 명품 노거수와 숲
⑪ 울진 행곡리 효행송(孝幸松) 노거수

효도의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울진 불영계곡 입구의 처진 소나무 노거수와 주명기 효자비.

사계절 언제나 같은 모습을 고집부리는 넓고 푸른 바다, 동해는 왠지 싫지 않다. 언제나 똑같은 변함없는 경관일지라도 계절 따라 느끼는 감정이 다르기 때문일까. 포항에서 삼척으로 이어지는 해안 길 따라 펼쳐지는 동해는 매번 다른 느낌의 감정이 가슴에 와닿는다. 그리고 보면 자연의 대상물이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속 감정이 호불호를 좌우한다는 생각이 든다. 쓸모가 없고 볼품이 없다고 하는 자연의 물상도 모르면 몰라도 알고 보면 존재 이유가 있고 그만한 가치가 또한 있다. 이처럼 만물에도 존재가치가 있거늘, 인간이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언론 기사를 보면 생명을 경시하는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거나 학대하는 패륜아가 있는가 하면 부모 역시 살기 힘들다고 어린 자식의 목숨을 함부로 하고 학대하는 일도 있다. 이러한 일들이 대부분 정신적 피폐에서 오는 물질적인 재산과 관련된 것이라 우리를 슬프게 한다.

 

360년이란 모진 세월을 용케 살아남아

아름다움 뽐내는 ‘처진 소나무 노거수’

전신불수가 된 아버지를 정성껏 모신

주명기를 기리는 효자비와 함께 자리해

“늘 푸른 소나무처럼 효도하란 뜻 일지도”

반면에 집안이 가난하였지만, 병든 아버지를 극진히 모시고 산 아름다운 효행의 이야기가 소나무 노거수와 함께 전해 내려오고 있어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울진에서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 가는 불영계곡 길 초입에 있는 행곡리 천연기념물 ‘처진 소나무 노거수’와 ‘주명기 효자비’이다. 소나무와 효자비는 한 세트의 멋진 조화로운 그림이다. 상상력으로 그린 추상화가 아니라 실존하는 풍경화이다. 긴 그림자와 함께 웅장함에 저절로 두 손을 합장하여 경배했다. 지난해 울진 산불에도 살아남았다. 물을 뿌리고 방염포를 부착하는 등 선제 대응에 나선 산림청과 산불 진화 관계인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었다. 인근에는 산불로 산림이 아직도 검게 그을려 있었다. 용케도 살아남아 줘서 감사하다는 눈짓을 보내니 푸른 솔가지가 반짝이며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다.

소나무 원래 키는 14m이었으나 지금은 10m로 줄었다. 바닷바람의 짓궂은 장난이나 시샘 탓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360년이라는 모진 세월을 용케도 살아남아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마을 개척 당시에 숲이었으나 차츰 사라지고 지금은 처진 소나무 한 그루만 덩그렇게 남아 ‘주명기 정려각’과 함께 하고 있다. 땅으로 향한 늘 푸른 솔가지의 흔들림은 갓 샤워하고 나온 여인의 긴 머리카락 날리는 듯 싱그럽고 청초하다. 살았으나 죽었으나, 나뭇가지에 붙어있거나 떨어져 있거나 한결같이 함께 있는 솔잎에서 부부의 사랑과 형제의 우정을 느낀다. 이를 부부 사랑과 형제 우정의 징표로 생각하고 우리 조상들은 소나무를 특히 가까이하였던 것이 아닐까 싶다.

우산처럼 펼쳐진 소나무 품속으로 들어가니 솔향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힘껏 배불리 솔향을 들어 마시었다 내뱉었다. 기분이 상쾌하고 정신이 맑았다. 마음이 편안하고 몸이 가벼움을 느꼈다. 피톤치드 성분이 혈액을 타고 전신으로 유영하면서 정혈작용을 하는가 보다. 나무 위를 쳐다보니 붉은 나뭇가지에 이름 모를 파란 잎의 어린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어떻게 자랄 수 있을까 궁금했다. 새가 씨앗을 물고 와서 이곳에 떨어뜨렸는지 아니면 나뭇가지에 새의 배설물이 그곳에 붙었는지 알 수 없다. 겨우살이란 식물은 새똥에 묻어나와 나뭇가지에 자란다고 알고 있었지만, 이것은 아니다 싶었다. 어쨌든 묘한 동거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신비스럽다. 이대로 소나무 품속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었지만, 갈 길이 멀어 빠져나왔다.

‘주명기 효자비’의 비문을 번역한 안내문을 살펴보았다. “주명기(朱命杞)는 본관은 신안(新安)이며 호는 치암(治巖)이고 지평(持平) 경안(景顔)의 후손이다. 그는 어려서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나, 전신불수가 된 아버지를 정성껏 모셨다. 아버지가 병으로 지친 원기를 회복시키고자 매일 붕어죽을 만들어 드렸는데, 추운 겨울에도 강으로 나가 얼음을 깨고, 그물을 놓아 붕어를 잡았다. 아버지 병이 위급할 때는 손가락을 계속 끊어, 그 흐르는 피를 받아 죽에 타서 드시게 하여 소생시켰다. 부친상을 당하였을 때는 여막을 치고 묘를 지켰다. 바쁜 와중에서도 효경과 소학 등 유학 관련 서적을 탐독하여 성리학과 관련한 나름의 해설서를 만들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다. 이와 같은 효행을 유림이 나라에 건의하여 포상과 함께 1875년 정려되고, 사헌부 감찰에 증직되었다. 1877년(고종 14)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비를 세웠다.”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늘 푸른 소나무처럼 부모에 효도하라는 메시지로 들렸다.

요즘 인구가 감소한다고 난리이다. 머지않아 사라지는 자치단체 시군이 생기고, 국가 경쟁력이 떨어져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한다. 과거에는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출산 억제 정책을, 지금은 반대로 출산 장려 정책을 내놓았다. 전쟁 중에서도 많은 자녀를 낳았고 전쟁의 후유증과 보릿고개라는 먹고 살기 어려운 시기에도 인구는 늘어났다. 지금은 경제 규모도 크고 훨씬 잘 살면서 결혼을 꺼리고 자식 낳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정부는 결혼과 출산 장려 정책으로 주택 마련 대출에 특혜, 육아비 지원, 육아휴직 등 모두가 경제적인 문제로 보고 있다. 공감하는 바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 그보다 부모와 자식 간 사랑과 효도가 먼저란 생각이 든다. ‘주명기 효자비’에서 보듯이 자식이 부모에 지극 정성으로 효도한다면 누가 아이 낳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부모의 재산을 탐하고 노리는 자식들로 인하여 부모는 효도계약서를 요구하고 있다. 또 자식은 돈 없는 부모를 업신여기며 천대하기까지 한다. 부모는 자식이 두렵고 자식은 부모가 부담스러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판국에 누가 자식을 낳아 부모가 되고 싶을까. 부모는 자식을 사랑으로 자식은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 먼저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는 머지않아 자신의 자화상이라는 것을 우리 젊은 세대는 알아야 할 것이다. 처진 소나무 노거수를 효행송(孝幸松)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싶다. 부모에 대한 효와 자식에 대한 사랑은 행복의 바로미터가 아닐까.

울진 행곡리 효행송(孝幸松) 노거수는…

1999년 4월 6일 천연기념물 419호로 지정됐다.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 672, 고도 37m, 경도 129.368483, 위도 36.972772에 위치해 있다. 나이가 약 350년(2012년 기준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약 14m, 가슴높이 둘레는 약 3m, 수관 폭은 15m에 이른다. 수형은 처진 우산형으로 가지가 가늘고 길어서 아래로 늘어진 모습을 하고 있다. 충북 보은의 정이품 소나무와 유사하다. 천전동 마을이 생겨날 때 심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마을의 상징목으로 보호받고 있다. 소나무는 소나무과의 상록침엽교목으로 솔, 소나무, 송목(松木) 또는 소오리나무로 부르기도 한다. 나무껍질은 붉은 갈색으로 거북의 등처럼 갈라진다. 꽃은 4월 하순부터 5월 상순에 핀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수종 중에 가장 넓은 분포 영역을 가지며, 중국, 러시아, 일본 등에도 분포한다.

/글·사진=장은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