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장은재의 명품 노거수와 숲
⑩ 영호남을 품은 지리산 천년송 노거수

영호남을 품은 지리산 천년송의 기운을 받아 행복한 2024년이 시작되기를 빌어본다.

지구에서 가장 큰 유라시아대륙의 동쪽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시작과 끝이다. 시작과 끝은 하나이다. 동에서는 시작이요, 서에서는 끝이다. 한반도는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서 끝난다. 다시 말해 백두산 천지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은 남으로 향하면서 동서로 지맥을 뻗어 골격을 유지하고 태백산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남서로 방향을 바꾸어 지리산 천왕봉에 안착한다.

대간은 하나의 정간과 열세 개의 정맥을 만들고 대간을 사이에 두고 정간과 정맥은 크고 작은 산과 강을 만들었다.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하고 강은 산을 넘지 못한다. 강은 산을 구분 지우고 산은 강의 발원지이다. 이렇게 산줄기와 물줄기는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람의 몸에는 혈맥이 흐르듯이 산과 강은 지맥이 흐른다. 인걸은 지령이란 말이 있다. 특히 백두산 천지와 지리산 천왕봉은 예로부터 신성시하며 경배하였다. 명산인 지리산은 영호남을 품고 지맥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구름도 쉬어간다는 전북 와운마을
천년 세월 품은 할매·할배송 우뚝

곧은 줄기·부드럽게 물결치는 가지
자연으로부터 배운 지혜 엿볼 수 있어

주민·관광객 천년송 앞 행복 기원
힘찬 사랑의 기운 새해 전국 달구길

지리산 반야봉과 명선봉을 양어깨에 올려놓고 있는 구름도 쉬어간다고 하는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 와운 마을, 지리산 해발 800m 고지에 신령스러운 할매송과 할배송이 천년의 세월을 품고 살아오고 있다. 그 이름은 천연기념물 424호 ‘지리산 천년송’이다. 우리 한민족 기상의 표상이다. 동해에 솟아오르는 새해 아침 햇귀의 기운을 지리산 천년송 노거수가 받아 대간에 뻗어 내린 정간과 정맥의 기운에 점화시키리라.

새벽 일찍 하얀 숫눈길을 밟으며 지리산 치맛자락 주름 속을 들추며 산중 와운 마을로 향했다. 손전등 불빛이 어둠을 밀어내자, 일행의 분신인 그림자가 나타나 동행해주어 적적함을 덜어 주었다. 천상의 마을로 가는 심심 계곡의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어둠 속에 반짝거리며 쏟아져 내렸다. 마침내 푸르스름한 동살에 감싸인 ‘지리산 천년송’이 얼굴을 내밀었다. 나도 모르게 경이로움에 고개를 숙이고 두 손 모아 경배했다.

장정 세 사람이 두 팔을 벌려 안아야 할 만큼 거대한 풍채였다. 장엄한 모습은 우리 민족의 곧은 절개와 굳은 의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름드리 곧은 줄기는 거북등 같았다. 검고 거친 육각형 주름은 인고의 세월을 방증했다. 푸른 치마 속 감추어진 붉은 속살의 수줍음은 한민족의 심상이런가 싶다. 하늘로 뻗어 올린 줄기의 기운은 공간의 틈새를 가지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었다.

지리산 능선에 우뚝 선 장송(長松)일지라도 바람이 원하면 춤을 추고 허리를 숙였을 것이다. 구름이 심술을 부려 장대비로 두들기면 제풀에 꺾일 때까지 고스란히 맞으며 순응했을 것이다. 하얀 눈이 내리는 날이면 푸름은 더욱 날을 세웠을 것이다. 곧은 절개와 굳은 의지, 인내와 순응은 자연으로부터 배운 지혜가 아닐까 싶다.

장송의 곧은 줄기에서 올곧은 정직한 기개를 보았다. 만 가지의 곡선에서 타협의 부드러운 미를 보았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기운! 잎에서 뿜어내는 녹색 향기! 엄숙하고 과묵한 풍모! 고결한 기상! 진리와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진선미의 결정체이다. 아~ 이것이 천년 삶의 원천이다. 나무는 인간의 스승이다.” 경이롭고 신비스러움에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시간의 흐름도 잊었다. 찬란한 아침 돋을볕이 천년송 가지에 내려앉았다. 펼쳐진 설산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환희의 전율에 오감이 곧추섰다. 들숨과 날숨으로 희망의 풍선이 부풀어 올랐다. 어디선가 이름 모를 산새가 파란 하늘로 날아올랐다. 점점이 보이다가 하늘을 여행하는 흰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바람은 나뭇가지 눈을 털어내고 달랑달랑 매달린 솔가지 이슬방울은 아침 햇살에 영롱하게 빛났다.

해가 중천에 왔을 무렵 와운 마을 주민들이 지리산 천년송으로 올라왔다. 먼저 할배송에 정성껏 장만한 돼지머리를 비롯한 산중 음식으로 제사를 지냈다. 전국에서 온 관광객들의 일부는 제사에 참석했다. 그들은 마을과 주민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했다.

하늘의 천신을 이어주는 할배송에 재앙을 피하고 복을 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할배송에 오방색 옷을 입히고 기원 주머니를 매달았다. 장구와 북을 치면서 흥건하고 질펀하게 한바탕 춤사위를 벌였다. 모두가 한패가 되었다. 천신도 지신도 흡족하였으리라. 지금 이곳에는 지난 아픈 상처도 아물고 오직 평화와 즐거움만이 있을 뿐이었다.

지리산 천년송은 푸른 날개를 활짝 펴고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이었다. 마치 남원 광한루에서 그네를 타고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는 춘향이 같았다. 춘향의 지고지순한 사랑의 절개도 ‘지리산 천년송’ 기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2024년은 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이다. 비상하는 청룡처럼 영호남을 품은 ‘지리산 천년송’의 새해 힘찬 사랑의 기운이 영호남을 뛰어넘어 한반도 전역을 뜨겁게 달구리라 소망한다.

 

천연기념물 노거수란 뭘까?

문화재보호법과 시행령에 그 절차와 기준이 정해져 있다. 천연기념물 노거수란 오래되고(古木) 거대한(巨木) 나무를 말한다. 노거수의 품격으로는 천연기념물, 기념물, 보호수가 있다. 천연기념물은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 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노거수를 말한다.

역사적 가치로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고유한 식물로 저명한 것 ▲문헌, 기록, 구술 등의 자료를 통하여 우리나라 고유의 생활 또는 민속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 ▲전통적으로 유용하게 활용된 고유의 나무로 지속해서 계승할 필요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학술적 가치로 ▲국가, 민족, 지역, 특정 종으로 학술적가치가 있는 것 ▲특수한 환경에 자생하거나 진귀한 가치가 있어 학술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

경관적 가치로는 ▲자연물로서 느끼는 아름다움, 독특한 경관 요소 등 뛰어나거나 독특한 자연미와 관련된 것 ▲최고, 최대, 최장, 최소 등의 자연현상에 해당하는 식물이어야 한다.

노거수(老巨樹)는 거목(巨木), 노목(老木), 명목(名木), 신목(神木), 당산목(堂山木), 정자목(亭子木) 등으로도 불린다.

/글·사진=장은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