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희 수필가
윤명희 수필가

비상깜빡이를 켜고 차를 갓길에 댔다. 서울 가는 남편을 역에 내려주고 집으로 가는 길이다. 새벽길은 한산하고 음악듣기 참 좋은 시간이다. 옆자리를 더듬거린다. 손에 엉뚱한 것이 잡힌다. 탁자위에 둔, 차 열쇠와 같이 들고 나온 게 분명한데 보이지 않는다. 평소 핸드폰을 꽂아두는 자리에 대신 빈 물병이 자리하고 있다.

조수석에 앉은 남편이 발치에 차이는 빈 물병을 들고는 “여기 꽂아둬야지 내릴 때 갖다 버리지”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혹시 물병 꽂으면서 자기 것인 줄 알고 가져갔나? 조금 전에 내려줬던 역 앞 버스정류소에 내 핸드폰을 들고 서 있을 것 같아 가던 길을 돌려 다시 갔다.

보이지 않는다. 대합실까지 가보고 싶은데 새벽 배웅을 위해 서 있는 차들로 주차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 뒤따라오던 차의 불빛들이 비켜달라고 껌뻑껌뻑 위협을 한다. 떠밀리다시피 앞으로 나아갔다. 유료주차장에 들어가려해도 잠옷에 외투만 걸치고 나온 나는 주차비조차 없다. 기름이 떨어졌다는 불빛마저 반짝거린다.

도로를 달리며 차선책을 생각했다. 핸드폰이 없으면 종일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데, 오늘은 쉬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노트북에 깔린 앱으로 남편에게 카톡부터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가속기 페달을 밟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혹시 차 바닥에 떨어져있나 확인부터 했다. 없는 게 확실하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노트북을 켰다. 로그인 되는 그 짧은 순간을 기다리지 못해 혹시 집에 두고 간 걸 착각 했나 해서 침대 이불을 털어보았다. 모니터 화면이 뜨자 남편에게 내 핸드폰 가져갔냐고 문자를 날렸다. 1분이 지나고 5분이 지나도 남편은 보지 않았다. 10분을 넘어서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집으로 오고 있는 거 아냐? 종일 핸드폰으로 일하는 내 사정을 잘 알기에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쳤다. 생각은 회오리가 되어 나를 옥죄었다.

다친 다리가 아파 서울 병원에 예약해 둔 남편이다. ‘딸애까지 휴가를 내서 서울역으로 마중 나오기로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자 머리가 복잡해졌다. ‘열차는 탔어요?’ 다시 그에게 카톡을 보냈다. 핸드폰이야 가져갔던 말든 열차는 탔으면 하는 마음이다. 묵묵부답이다. 30분이 지나자 목발을 짚은 그가 금방이라도 집에 들어올 것만 같다. 가족 단체 톡방을 두드렸다. 누구든 아빠한테 전화하라고 했지만, 아무도 읽는 이가 없다. 아직은 젊은이들이 일어날 시간은 아닌가보다. 시계를 쳐다보고 모니터를 흘낏거리며 온 집안을 다시 뒤졌다.

동네 친구들 단체 톡방을 두드렸다. 그들은 아무리 늦게 일어나더라도 지금쯤이면 화장실은 다녀올 시간이다. ‘누구 일어나신 분 없소?’ ‘왜? 나 아까 일어났어.’ 역시 금방 연락이 온다. 남편에게 전화 한 통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안 봐도 비디오라는 듯이 더 이상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는다.

모니터에 남편이 떴다. 자기는 안 가져갔다는 짤막한 대답이다. 그는 벌써 목적지의 반을 통과하고 있었다. 차를 탔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마음의 회오리바람이 잦아든다. 그가 새벽 열차를 타기 위해 깬 잠을 다시 이어가는 동안 나는 내가 만든 생각 속에서 허둥거렸다는 사실이 멋쩍다. ‘그럼, 핸드폰은?’ 또 다른 바람이 몰려왔다. 집안은 다 뒤졌고, 분명 차 안에는 없는 걸 확인했는데 남편이 차에서 내리다 차 밖으로 딸려나갔나? 그럼 이건 또 어떻게 찾지? 매번 찾아다니는 내게 짜증이 달라붙는다.

그제야 잠에서 깨어난 아이들의 말이 까똑 까똑 난리가 났다. 모두 돌아가며 내게 전화를 하겠다고 한다. 누군가 소리를 듣고 찾아달라는 요청이다. 집안에서는 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 다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차 문을 열자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소리는 들리는데 보이지 않는다. 조수석 의자를 한껏 뒤로 밀어 봐도 없다. 나 찾아보라는 소리는 약 올리듯이 울렸다. 운전석 의자를 사정없이 밀어댔다. 엉덩이는 치켜들고 얼굴만 감춘 개구쟁이처럼 한 귀퉁이 바닥에 엎드려있다. 그것이 내 가까이 숨어 있었다. 숨바꼭질이 끝나자, 아침이 고요하다. 또 언제 숨어버릴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