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장은재의 명품 노거수와 숲
⑨ 영양 답곡리 장군솔(將軍松) 노거수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는 영양 답곡리 천연기념물 만지송 노거수.

구름 위를 거닐면서 선녀를 만나는 꿈을 꾸었다. 길몽이라 믿으면서 또 잠이 들었다. 아침 안개가 무언가 감추려는 듯 산허리를 감쌌다. 겨우 찾은 입구에는 두 마리의 개가 지키고선 낯선 이방인을 보고 연신 짖어대었다. 잭이 콩나무를 타고 하늘나라 거인의 집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안개구름 속으로 한 계단 한 계단 나무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올랐다. 70도 경사진 계단은 397개나 되었다. 오르다가 멈추어 가쁜 숨을 고르고 또 오르기를 반복하여 마침내 하늘에 닿았다. 고생만큼 기쁨은 컸다. 계단으로 시작해 계단으로 끝나는 곳에 영양 답곡리 천연기념물 만지송 노거수가 기다렸다. 그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에 놀랐다. 이런 묘한 감정은 언제, 어디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천상의 선녀를 만난 것처럼 몽환적인 분위기에 빠졌다.

 

70도 경사진 계단을 397개 오르면
천연기념물 만지송 노거수 찬연히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에 천상인듯

전쟁터 나가는 장수가 심었다 전설
마을 지켜주고 아들 낳게 된다 전해
주민들 ‘장수나무’ ‘장군송’ 부르기도

“노거수의 형태적 아름다움과
내재된 정신적 미학을
푸른 잎과 붉은 가지의 조화를
어떤 예술가가 완벽히 표현할까…”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주민들은 이 나무를 ‘장수 나무’ 또는 ‘장군송’으로 부르기도 했다. ‘어떤 장수가 이 나무를 심으면서 나무의 생존 여부가 자신의 성공과 실패에 연결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이 이 나무에 지극정성으로 빌면 나무의 영험함으로 아들을 낳게 된다는 속설도 함께 전한다.” 나라를 위해 전쟁터로 나가는 장수의 성공과 실패가 나무의 살고 죽음과 연결된다고 하니 주민들에게 나무는 태극기와 같은 애국심의 상징물이 되고, 만고충절(萬古忠節)의 나무로 마음속에 심어졌을 것이다. 어찌 보호하지 않을 수 있을까. 또한 마을을 보호해 주는 신통한 능력까지 있다고 주민들은 믿고 있다. 40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아름답고 웅장한 소나무 노거수를 그 옛날 나무를 심은 장수를 생각하면서 만고 충절의 ‘장군솔(將軍松)’이라 별호를 붙여주고 싶다.

아름답고 웅장한 장군솔을 무엇으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자연은 신이 창조해낸 가장 위대한 예술이며 모든 예술의 영원한 주제이다. 소나무 노거수의 형태적 아름다움과 내재 된 정신적 미학을, 푸른 잎과 붉은 가지의 조화를 화가라면 어떻게 표현할까? 화려한 색감의 수채화가 좋을까? 은은한 멋이 있는 수묵화가 좋을까? 신라의 화가 솔거라면 늘 푸른 잎에서 희망을, 붉은 가지 용틀임하는 모습에서 용기를 모두 함께 담아 그려놓을 수 있을 텐데.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는 영양 답곡리 천연기념물 만지송 노거수.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는 영양 답곡리 천연기념물 만지송 노거수.

나무와 숲은 음악 작품의 소재이고 주제이며 악상 발견의 장소이다. 자연의 노랫소리 들린다. 새소리, 벌레 울음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바람 소리 등 묘한 소리가 하모니가 된 원시적 자연의 노랫소리다. 자연이 만든 화음을 들으니, 마음이 정화되고 안정된다. 숲에서 들리는 자연의 소리로도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느끼는 감정을 음악가라면 어떻게 표현할까? 베토벤과 모차르트라면 피아노나 바이올린 소리로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산림 문학 시에다 곡을 붙여서 만든 서정적인 가곡으로 표현해 보면 어떨까. 최상의 감정 표현이 그저 ‘좋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슬플 뿐이다.

바람이 솔가지를 스쳐 지나간다. 묘한 바람 소리에 귀 기울여 들어본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 미세한 감정의 차이를 느낀다. 바람이 솔가지를 스칠 때마다 쉬이익, 쉬이익하는 통소 소리 같은 송뢰가 들리고 때로는 솨악, 솨아악 하는 파도 소리 같은 송도가 들린다. 미세한 자연의 솔바람 소리의 떨림이 나의 감정선을 자극한다. 어느 악기라도 이런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흉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평소에는 시끄럽게만 느껴졌던 소리가 이렇게 아름답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통방통하다.

사진작가라면 사실 그대로를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사진 한 장 속에는 소리, 냄새 등 무궁무진한 스토리가 있다. 사진은 인간적이면서도 자연이 지니는 원초적인 에너지를 함축하고 한순간을 영원히 정지시킨다. 그림이 덧셈의 예술이라면 사진은 뺄셈의 예술이다. 주변의 군더더기는 모두 없애 버리고 중점적인 포인트만 담아 강조할 수 있다. 가장 아름다운 풍광과 모습은 순간적으로 나타나 순식간에 사라진다. 사진은 이 순간을 담아낼 수 있으니 오늘 마음껏 실력 발휘 좀 해 볼까 싶다. 장군솔의 이모저모를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순간의 아름다운 모습을 렌즈에 훔쳐 담고 가슴에도 담았다. 지금의 아름다운 느낌의 감정을 시로 표현해 본다.

‘천상의 만고충절 장군솔/안개구름 사라지자

늘 푸른 옷에 옥구슬 별이 대롱대롱/아침 햇살에 반짝이네.

천상의 만고충절 장군솔/안개구름 사라지자

붉은 속살의 기운/가슴을 불태우네.‘

범인이 고상하고 멋진 표현을 한다는 욕심 자체가 애당초 부질없는 짓인 것 같다. 문학, 예술가들이 와서 장군솔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펼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해 본다. 자연이 빚어놓은 장군솔은 어느 예술작품보다 훌륭하다. 또한 문학, 예술작품 대상물이기도 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천상에서 놀다가 산에 기대어 세워 놓은 긴 나무 사다리 계단을 타고 다시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다. 마을에서 장군솔을 바라보니 동산에 떠오르는 푸른 보름달 같기도 하고, 서산에 걸린 푸른 반달 같기도 하다. 용이 꽈리를 틀고 있는 모습 같은 붉은색의 만 가지가 아직도 머리에 맴돌고 있다.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는 영양 답곡리 천연기념물 만지송 노거수.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는 영양 답곡리 천연기념물 만지송 노거수.

나무는 살아 있는 모습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서로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나무야말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예술품이고 숲은 그들을 진열한 박물관이다. 장군솔의 건강함에서 아름다움을 보았고, 아름다움에서 건강함을 보았다. 건강과 아름다움은 하나로 연결되는가 보다. 우리의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도 건강한 삶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장군솔을 보고 깨달았다. 채우지도 못할 물질적 욕심은 뒤로하고 감추어진 노거수를 찾아 헤매고 찾은 노거수의 숨겨진 고유성과 진리를 또 찾았다. 수백 년 쌓아온 노거수의 공덕과 지혜는 문학, 예술이 되어 민속 문화의 꽃을 피우고 우리 삶에 즐거움과 행복을 안겨주었다. 문학은 우리 삶의 질을 높여주고, 예술은 우리 영혼을 맑게 해 준다. 한 해를 보내면서 영양 답곡리 장군솔에 나라의 번영과 평화가 무궁하리라 빌어본다.

장군솔 노거수의 이름이 지어진 사연

장군솔 노거수는 영양군 석보면 답곡리 산 159번, 고도 313m, 위도 36.54343, 경도 129.138582에 위치해 있다. 수령 420년, 키 15m, 가슴둘레 4.4m, 앉은 자리 폭 20m. 다섯 줄기에 23개의 지지대가 설치돼 있다. 1982년 11월 10일 보호수로 지정됐다. 1998년 12월 23일 만지송(萬枝松)이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다. 만지송이라는 이름은 가지가 여러 갈래로 갈라진 모양에서 유래했다. 소나무 품종은 반송(盤松)이다. 나무의 생김새가 쟁반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글·사진=장은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