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문경 수필가
배문경 수필가

항구의 불빛이 환하다. 육지의 가로등 불빛과 어우러져 물결 위에 일렁인다. 어둠 속으로 출항한 배들은 다시 감청색 어둠을 뚫고 새벽 항구에 배를 정박시킨다. 그물에 걸려든 고기들이 항으로 쏟아져 내린다. 막 잡아 올린 생선의 비늘은 아직 바다의 푸른빛이 감돈다.

경매인의 손에서 쩌렁쩌렁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낙찰을 보려고 몰려든 경매인들이 줄을 지어 쏟아진 고기 주위로 둥글게 말아 선다. 경매인이 입안에서 웅얼대는 소리를 그들은 잘도 알아듣는다. 겉옷을 열었다 닫았다하며 수신호를 보낸다. 추임새를 넣는 경매인들은 눈빛과 온몸으로 작업을 건다. 온갖 동작이 우습고 진지하다. 그들의 집중적인 의사표시는 원시 부족의 춤사위 같다. 언어 이전의 세계처럼 그들은 손가락과 표정으로 뜻을 전달한다.

그들의 수신호가 아침을 연다. 가장 높은 값에 널브러진 고기들이 하나둘씩 다시 미끄럼을 타고 팔려 나간다.

수런수런 넓은 어시장이 삽시간에 사고파는 사람들로 지도가 그려진다. 판매되는 물건에 따라 종류별로 지엽적인 모습을 갖추고 전체를 보면 큰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 물에서 건져 올린 것에는 없는 것이 없다.

제사상에 올릴 고기들은 끼리끼리 몰려있다. 조기며 열기며 돔들이 서로 이웃처럼 좌판에 드러누웠다. 뼈가 센 생선들이다. 바다를 종횡무진 얼마나 돌아다니면 저토록 센 뼈를 가질까. 그래서 제사상에 뽑혔나 보다.

선조들은 온통 바다를 다닌 생선을 통해 바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굵직한 비늘을 치고 아가미를 통해 내장이 온전히 사라진 멀쩡해 보이는 생선을 담는 사람들. 누군가의 기일인 모양이다. 죽은 고기가 죽은 이들을 위해 상위에서 고요히 제값을 하게 되리라.

바다의 포식자인 상어는 이미 냉동실에서 얼어 밖으로 나와도 뽀얀 표면을 지녔다. 검은 표피 속에 핑크빛 고운 살들이 무게를 재고 누웠다. 굵게 저며진 살은 꼬챙이에 끼워져 적당한 간을 맞추고 노릇하게 구워질 것이다. 산적의 대표인 돔배기는 포항과 인근 동해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소고기산적이니 삼색전이니 크고 작은 꼬챙이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바다를 가르며 다녔을 단단한 지느러미가 떠오른다.

저들이 헤엄치던 바다는 지금껏 물이 마른 적이 없었다. 모든 물고기의 집이며 숙소이다. 물고기 특유의 비릿한 내음은 왠지 물고기들이 서식하던 곳의 냄새가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바다에 살 때 그들은 살아 움직이느라 바빠서 냄새를 간직하기 힘들었으리라. 뭍에 오르며 숨이 끊어질 때 바다로 돌아가려고 애쓰느라 비릿한 냄새로 소리를 치는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회귀(回歸) 본능이리라.

어물전에서 제사에 쓸 고기를 샀다. 수산 시장은 사람들로 붐비고 갖가지 어물이 좁은 통로를 빼고 즐비하다. 바다에서 재수 없이 잡혀 온 고기는 얼마나 황망할까. 살아 꿈틀거리는 문어와 횟감이 된 생선들이 바다로 돌아가고자 발버둥을 친다. 몸부림 속에서 비늘이 벗겨 지기도 하고 상처를 입은 것들이 참혹하기도 하다. 싼값에 팔아야하니 주인의 표정은 밝지 않다.

팔려나가는 고기들과 사람들이 썰물처럼 사라지자 어판장이 고요해진다. 언제 그렇게 시끌벅적했냐며 바닥에는 씨눈 달린 고기 한 마리 남아있지 않다. 동해 쪽에서 바다를 향해 햇살이 쏟아져 출렁거린다. 온전한 바다가 한 폭의 풍경이다. 하늘과 바다는 수평선을 놓고 하나가 된다. 바다와 육지도 철벅이는 아이들의 물장난에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포항 어시장을 어슬렁거리며 물에서 온 것과 육지에서 온 것으로 제사에 쓸 것을 쓸어 담는다. 시장은 삶에 필요한 것이 있는 사람들이 물고기가 되어 유영하는 곳이다. 물 작업복에 장화를 신은 노역자들의 힘찬 걸음이 장바닥을 휘젓는다. 사람 냄새가 더욱 진해지는 어물전에서 내가 어물쩍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