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장은재의 명품 노거수와 숲
⑧ 울진 후정리 쌍둥이 향나무 노거수

울진 죽변항의 수호신’이라 불러도 좋을 향나무 노거수.

겨울 해변의 풍경은 삭막하고 차갑게 느껴진다. 그러나 해변 모래밭을 거닐고 있거나 산책하는 연인을 볼 때면 낭만적인 분위기가 마음을 따뜻하게 녹인다. 붉은 기운을 뿜으며 동해에 솟아오르는 아침 해맞이는 언제나 가슴이 벅차오른다. 푸른 바다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물비늘은 한 줄기 햇살이 만든 자연의 걸작품이다. 그 풍경은 언제 보아도 장관이며 늘 나에게 용기를 심어 준다. 더더욱 고기잡이배들이 새벽의 정적을 깨고 뱃고동 소리를 울리면서 항구를 드나들 때면 항구의 아침은 활기에 차 넘친다.

그 옛날 신비의 섬 울릉도에서 바다를 건너 이곳 울진 죽변항에 정착한 노거수가 있으니 바로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297-2번지에 주소를 두고 살아가고 있는 향나무이다. 그는 출렁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찬란한 아침의 장관을 맞이하는 죽변항의 수호신이다. 그의 삶을 높이 평가하여 나라에서는 1964년 1월 31일 천연기념물 제158호로 품계를 높여주었다.

 

울릉서 왔다는 후정리 향나무 노거수

올해 523살이 된 죽변항의 터줏대감

1964년 천연기념물로 품계를 높여줘

밑둥치서 두 가지로 하늘로 뻗어 자라

한 줄기는 곧게 한 줄기는 비스듬히 누워

쌍둥이 향나무 노거수라 해도 좋을 듯

지난해 여름 울진에 살고 있는 집안 조카 집을 아내와 함께 방문했다. 가족과 함께 해변에 있는 횟집으로 점심 먹으러 갔다. 물회가 유명하고 맛있다고 하여 한 그릇을 뚝딱 먹고는 죽변항에 정박해 놓은 낚싯배를 보러 갔다. 그는 바다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을 배에 태워 연안 근처 체험 낚싯배를 운전하고 있었다. “겁나고 위험하지 않니?”라고 물어보니 해양경찰과 항상 연락하고 있어 안전하다고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대왕 문어를 잡고 낚싯배를 운영하는 것이 재미도 있고 행복하다고 덧붙여 말했다.

우리를 ‘폭풍 속으로 드라마 세트장’으로 안내하여 주변의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구경시켜 주었다. 우린 ‘하트해변’을 보면서 ‘용의 꿈길’을 걷고 등대를 둘러보고 죽변항을 구경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세계 4대 인류 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었지만, 오늘날 세계 80억 인구 중에 삼분의 이가 바다에서 60km 이내에 살고 있다. 바다가 우리 삶의 중심축으로 변해가고 있다.”라고 말해 주면서 자긍심을 심어 주었다.

지난해 제대로 보지 못한 울릉도에서 왔다는 후정리 향나무 노거수를 올해 ‘나즐로(나 홀로 즐겁게) 노거수 여행’에서 마주했다. 그는 1916년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발행 ‘거수(巨樹)·노수(老樹)·명목지(名木誌)’ 기록에 416살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올해는 523살이 된다. 산 나이로 따지면 죽변항의 터줏대감이다. 이를 주민들도 인정하고 죽변항 수호신으로 경배하며 제사를 모시고 있다.

향나무 노거수 전설에 콘텐츠의 옷을 입혀본다. “그 옛날 죽변항은 괭이갈매기가 모래밭에 앉아 졸거나 창공을 나르며 고깃배를 호위하고 있다. 어부들은 작은 항구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바쁘다고 총총거리며 뛰거나 서둘지도 않는다. 느긋하게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향나무 한 그루가 괭이갈매기 안내를 받으며 울릉도에서 망망대해 동해를 건너 울진 죽변항에 도착했다. 주민들은 울릉도에서 떠밀려온 것으로 알고 울릉도가 바라보이는 바닷가 언덕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향나무는 밑둥치에서 두 가지로 하늘로 뻗어 자랐다. 한 줄기는 곧게 하늘로 자랐으나 다른 한 줄기는 도로변으로 비스듬히 누워 자랐다. 가지는 아래로 처졌다. 마을 주민들은 더 이상 쓰러지지 않도록 서로의 몸에 쇠사슬로 묶거나 지팡이로 지지해 주었다.

그리고 보니 쌍둥이 향나무 노거수라 해도 좋을 듯하고 처진 향나무 노거수라 해도 좋을 듯하다. ‘쌍둥이’란 말은 함께 한다는 외롭지 않다는 느낌이 있으나 ‘처진’다는 말은 뭔가 힘이 빠지는 느낌이 있어 아무래도 ‘쌍둥이’란 말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주민들의 사랑에 감동한 향나무는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어부들의 안전을 지켜주고 풍어를 가져다주었다. 향나무 노거수는 주민들의 보살핌을 받고 주민들은 향나무의 멋진 모습과 진한 향기에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서로 상생하면서 사랑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향나무는 울릉도와 울진 죽변항을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맺어 주었다”

푸른 하늘 흰 구름의 배경에 구불구불한 가지에 몽실몽실한 잎은 향나무 고유의 미를 한껏 높여 놓았다. 눈길을 뗄 수 없다. 아름다움에 빠져 한참을 몸과 마음이 정지 화면이 되었다. 고사 된 두 가지를 제거하지 않고 방부, 방수 처리하여 미라로 만들어 놓았다. 동물 형상의 조형 작품 같았다.

또 다른 향나무 두 그루는 하나는 언덕 아래로, 다른 하나는 언덕 위로 누워서 자라고 있다. 땅속에 있어야 할 뿌리가 거의 모두 땅 밖으로 노출되다시피 하여 보는 사람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했다. 나무의 생명의 끈질김은 우리 인간의 생명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향나무 노거수는 당집을 가지고 있었다. 통나무집으로 지붕은 기와를 얹었다. 태극 문양을 가슴에 달고 바닷가 도로변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인사를 주고받으면 앞으로 수백 년 세월을 또 보낼 것이다. 햇살이 내리쬐는 바다에는 윤슬이 보석처럼 반짝거리고 향나무 노거수 푸른 잎에는 바닷바람이 입맞춤하고 있다. 조그만 항구의 쌍둥이 향나무 무궁하여라.

 

울진군민의 지극한 나무 사랑

울진군은 맑고 깨끗한 바다와 하늘, 그리고 솔이 울창한 산을 가지고 있는 살기 좋은 아름다운 고장이다. 특히 울진군 죽변항은 해산물의 보고이며 동해안 어업 전진기지이다. 울릉도와 직선 거리상 가장 가까운 곳이기도 하다.

향나무는 측백나뭇과의 상록침엽교목으로 전국에 분포한다. 동해안 지방의 해안과 울릉도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 잎에는 인엽과 침엽의 종류가 있다. 침엽은 흔히 3륜생이고 아래가지에 많다. 인엽은 둔두로서 끝이 가지에 거의 붙는다. 자웅이주 또는 드물게 자웅동주로서 꽃은 4~5월에 피고 열매는 다음 해 9~10월에 자흑색으로 익는다.

본 향나무는 1916년 일제 강점기에 조사한 내용을 보면 한반도 전역에 향나무 25주 중 경북에 3그루가 기록되어 있다. 당시 수고는 9m, 수령은 416년으로 기재되어 있다. 현재 수령을 계산하면 523년이 된다. 키는 13.5m이다. 울릉도에서 파도에 떠밀려 내려온 향나무 노거수를 심었다는 전설로 보아 울진 군민의 나무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글·사진=장은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