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확

아주 잠시, 한 세계가 구약처럼 밀려날 때

그때 오직 우리가 바라고 바랐던 건,

무너져 내린 어느 제국의 한 귀퉁이 구원 없이

여전히 버림받거나 쫓겨난 자로 살아가기,

아니면 쓸개즙 같은 근원의 물기를

연신 핥는 혀들의 낯선 느낌을 지속하기,

하지만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우리가 내내 사랑하고 의지한 건

일체의 희망 없이 희망의 전부를 꿈꾸기,

(….)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찾아 헤매던 건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지평 같은 절대 고독,

혹인 실상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어

다시 펼쳐 든 신약 같은 순간적인 사랑의 윤리.

이 시를 읽으며 ‘희망은 희망 없는 이들을 위해 주어져 있다’는 발터 벤야민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은 가늠하기 힘들지만, “일체의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시절’이 있었다. 총칼이 삶을 지배해서, 시인이 “구원 없이” “버림받거나 쫓겨난 자로 살아”야 했던 시절. 하나 그 시절엔 도리어, 희망이 없기에 사람들은 “희망의 전부를 꿈꾸”었다. 그들은 ‘절대 고독’을 살아내는 동시에 “순간적인 사랑의 윤리”를 품었던 것!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