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출간
1978년 문단 데뷔 후 9번째 시집
장시 ‘프네우마 시편 1~18’ 포함
‘서로 다른 길로 가는 이들에게’
‘수성못에 내려앉은 하늘’ 등

‘프네우마 시편’ 표지

“눈이 참 어리석다.

이 땅에 내린 적설량과 강수량을

눈으로 헤아려내지만

잠자리 날갯짓에서 번지는

파동과 내 폐 속의 얼룩은

엑스레이를 거쳐 읽어낸다.

지난 시간 내 귀를 애무하던

여자의 지워진 잔상을

바람의 파동으로는 판독하지 못한다.

없는 세계를 보게 할 수 있는

활성화된 시제와 공간 속

정물화 같은 소나무 녹색 바늘이

존재의 눈금이다.”

- 이상규 시 ‘프네우마 시편’ 6

시인이자 작가인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전 국립국어원장)가 아홉 번째 시집 ‘프네우마의 시편(예서)’을 펴냈다.

지난 8월 ‘외젠 포티에의 인터내셔널가 변주(예서)’이후 불과 석 달 만에 출간된 ‘프네우마의 시편’에는 장시 ‘프네우마 시편 1~18’을 포함해 ‘서로 다른 길로 가는 이들에게’, ‘동화사 화림당 돌계단에서’, ‘성산포 바다’ 등 작품의 미학적 깊이와 넓이가 한층 확장된 시편 총 96편의 시를 수록했다.

이번 시집에는 ‘출렁이는 강물’ 등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펼친 시와 함께 ‘양지다방 여주인’처럼 인물에 관해 형상화한 시처럼 인간에 대한 성찰을 통해 문학의 본질을 인간 삶 속에서 찾고자 하는 작품들이 담겨 있다.

‘발해사론’과 같이 고전적 발상을 시로 형상화한 시편들은 작가가 평소 관심을 갖고 있는 한국의 북방민족사와 불교적 장소 등과 같은 고전에 시적 상상력을 결합한 작품이다.

또한 이 시집에는 ‘수성못에 내려앉은 하늘’과 같이 산문 형태의 시도 다수 포함돼 있다. 서술적 심상의 메시지 전달의 양이 많아진 경우에 운율성을 배제한 시적 산문의 결과다. 특히 표제 시이기도 한 장시 ‘프네우마(Pneuma)’ 시편 18편이 게재돼 눈길을 모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육체 안에 프네우마(pneuma)라는 보이지 않는 물질이 있어서 이 물질을 매개로 삼아 영혼이 모든 신체 운동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프네우마라는 말은 본디 바람·공기·날숨을 뜻하며 나중에 ‘성령’이라는 종교적 의미가 파생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네우마는 종교적 함의가 없는 단순한 ‘물질적 기운’이다. 신이 에테르를 매개체로 삼아 우주의 천체를 회전시키듯이, 영혼은 프네우마라는 물질을 통해 몸을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상규  경북대명예교수
이상규 경북대명예교수

이상규 시인은 시집 말미의 화가 전완식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18편까지 창작한 이 ‘프네우마(Pneuma) 시편’을 100편까지 쓸 것이다. 의미를 부숴내는 백화 작업, 언어의 질서를 깨면서도 상상하는 메시지를 포기하는 작업으로 ‘바람’이라는 존재의 의미에 천착하고 싶다”고 말한다.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미학적 존재다. 인간이 가장 보배로운 미적 대상이며, 사랑이 듬뿍 담긴 최고 절정이 미학적 욕망의 대상이다. 인간 삶을 둘러싸고 있는 우주의 본질에 한 걸음 다가서는 예술의 한 영역이 문학이다. 그래서 가치 있는 행위인 동시에 책임 또한 적지 않다.”(인터뷰 중에서)

이상규 시인은 1978년 현대시학 추천 완료로 문단에 데뷔한 뒤 ‘종이나발’, ‘13월의 시’, ‘외젠 포티에의 인터내셔널가 변주’ 등 시집 여러 권과 연구저술들을 발표했다. 외솔학술대상, 봉운학술상, 대한민국한류전통문화대상, 한국문학예술상(2015), 매천황현문학대상(2017)을 수상했고, ‘13월의 시’는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됐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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