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영 수필가
정미영 수필가

푸른 하늘 아래 단풍비가 내리는 느긋한 오후다. 바람 따라 흩날리는 붉은빛의 나뭇잎이 내 가슴에 날아와 침전된 감정선 위에 앉는다. 기분 전환 겸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어느덧 형산강변이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안무를 연습하고 있다. 근처 중고등학교에서는 12월에 축제가 열리는데, 반별로 대부분 학생들이 참여한다고 들었다.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땀 흘리며 열중하는 모습이 어여쁘다. 무대 위에서 즐길 준비를 하는 학생들을 보는 동안, 추억 하나가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사노라면, 크든 작든 가슴속에 지녀 온 이야기를 문득 풀어놓고 싶은 날이 있다. 내 말을 경청하는 이가 없어도 독백을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고, 자기 할 일을 끝낸 사람처럼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이 바로 오늘일까?

내가 대학을 다닐 때, 우리 학교에는 유명한 밴드가 있었다. 스콜피온스(Scorpions)의 록 발라드 곡인 ‘Holiday’나 ‘Still Loving You’ 그리고 ‘Wind Of Change’를 보컬이 부를 때면 음색이나 창법이 원곡자와 비슷해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스틸하트(Steelheart)의 ‘She’s Gone’을 열창하면 그의 성량과 고음에 거듭 열광했다. 리드 싱어의 노래는 축제 때 더 빛이 났다.

관객이 무대라는 공간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는 이들의 움직임에 끌림과 설렘을 갖지 못한다면, 공연하는 이들은 얼마나 공허할 것인가. 그런 면에서 관객들은 보컬의 섬세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들으며 감동과 전율을 느꼈으므로 밴드는 뿌듯했으리라.

밴드의 열정과 관객의 환호가 최고조 접점에 다다르면 축제도 공연도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1990년대를 살아내야 했던 수많은 20대 청춘, 마냥 즐거운 시절은 아니었다. 학업이나 취업, 사랑 등 저마다 가슴 한 켠에 아픈 상처를 간직한 채 하루의 고된 생활을 이어나가는 학생들이 많았다. 막막하고 우울한 일이 겹쳤던 친구일수록 목청껏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르며 응어리진 감정을 발산했다.

카타르시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Poetics)’에서 비극을 정의할 때 처음으로 카타르시스 즉 정화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대학 밴드의 음악은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현실에 절규했던 내 주변의 젊은이들에게 보컬과 교감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행위를 통해 감정을 표출하게 했고, 개별적으로 치유를 받는 귀한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길고도 열렬한 여운을 남기며 밴드의 공연은 끝났다. 취향에 따라 누군가는 막걸리를 마시기 위해 운동장에 즐비했던 포장마차 중 주점에 들렀고, 나와 친구들은 따뜻한 커피를 마시기 위해 학과 선후배가 운영하는 ‘일일찻집’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곳에서 교양 과목 교수님을 뵈었다. 나를 보고 빙그레 웃으시며 “무대의 화려한 환상에 속으면 안 돼”라고 말씀하셨다.

이유인즉, 밴드 여성 보컬이 같은 과 친구였다. 축제가 열리기 얼마 전에 밴드 동아리실에 놀러오라고 해서 간 적이 있었다. 노래 연습하는 것을 보고 왔는데 리드 싱어가 나에게 호감을 느꼈단다.

친구는 나에게 자기 체면을 봐서 다가오는 축제 때 그에게 꽃다발을 주면 좋겠다고 성화였다. 친구의 간절함에 못 이겨 장미꽃 한 송이를 공연 때 건넸다. 그 장면을 교수님께서 보신 것이었다.

그 시절 무대에 서는 일은 용기 있는 자만이 오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몇몇 여학생들의 장래 꿈이 직업인이 아니라 신사임당처럼 ‘현모양처’였던 시절이었으니, 타인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무대에 오른다는 것은 일반인으로서는 쭈뼛거리며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다.

요즘 학생들은 어린이집에서부터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일이 빈번하다. 타고난 기질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무대에 올라 당당하게 공연을 펼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지금 형산강을 배경으로 춤추고 있는 저들이 앞으로 각자 자신의 인생이라는 무대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말고, 주인공으로 멋지게 살아가기를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