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아

원룸에 사는 친구가 벼를 키운다며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작년에 자라지 않던 벼가 올해는 쑥쑥 자라

낱알이 열렸다고 초록이 가득한 벼를 찍어 보냈습니다.

(….)

말갈기를 부여잡고 사막을 달리는 사람을

챙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쭉정이 뽑는 사람을

자라지 않은 벼와 자란 벼를 비교하며 지나간 함성을

생각할 것입니다.

솜털처럼 가벼운 벼들의 흔들림과

흔들리지 않으려는 친구의 흔들림을

원룸 작은 창문을 뚫고

구름의 한쪽 귀퉁이를 자르고

달아나는 상상을 해봅니다.

볕이 들지 않는 원룸에서

한 뼘의 벼들과 함께

친구의 슬픔이 느리게 올라오고 있습니다. (부분)

“사막을 달리는” 삶을 꿈꾸었을 ‘친구’는 현재 “볕이 들지 않는 원룸에서” 그가 키우는 “한 뼘의 벼들”처럼 흔들리며 살고 있다. 그런데 “작년에 자라지 않던 벼가 올해는 쑥쑥” 자라났다는 것! 친구가 그 벼 사진을 시인에게 보낸 것은 자라는 벼들로부터 어떤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그는 그렇게 희망을 품음으로써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려는 것, 시인은 이로부터 “느리게 올라오”는 슬픔을 읽고 있지만.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