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동화작가 전은주

“‘글을 쓰고 있다면 누구든 작가다.’지난한 습작시절 위안 삼은 문구입니다. 말 대로라면 아주 오래전부터 저는 작가였는지 모릅니다. 여전히 아끼는 문장이지만 무서운 말이기도 합니다. 쓰고 있지 않으면 작가가 아니라는 뚯이니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꿈을 이루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는 괴테의 말을 되뇌며 여전히 미완성인 자신의 꿈을 응원하는 이들이 많을 테다. 꿈과 목표만 있다면 언젠가 꼭 이뤄진다는 명징한 진리 앞에 우리는 마음을 베일 때가 많다. 하지만 무수한 좌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어릴 적 꿈을 이뤄낸 이가 있다. 첫 동화집 ‘인형병원’<사진> 출간을 앞 둔 전은주 작가다.

 

세대 상관없이 공감할 이야기
인형 수선 할머니와 손님의 추억
다락방의 주인 동화 속 주인공들

작가가 되는 꿈은 이뤘다.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작가로
책 속에서 오래오래 놀겠다.

-원래 꿈이 작가였나?

△그렇다. 탁월하게 잘 하는 게 없었다. 특히 몸으로 하는 것은 다 젬병이었다. 못하는 것에 재미를 붙이기는 어렵다.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이 좋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다. 그때부터 꿈이 작가였던 것 같다. 이런 저런 이유로 작가가 되지 못했다. 글을 쓰고 있을 때도, 쓰지 않고 있을 때도 막연하게 작가의 세계를 동경했다. 포항이라는 낯선 곳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도서관을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했다. 도서관에서 어린 딸이 물었다. “엄마 꿈은 뭐야?” “작가” 딸은 잊을 만하면 묻고 또 물었다. 잠재되어 있던 꿈, 나도 모르게 불쑥 나온 그 말을 책임져야했다. 그래서 동화작가가 되었다.

-첫 동화집 출간을 앞두고 있다는데

△월간문학 동화부문 신인상, 경상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당선되면서 작가가 되었다. 글밭이 탄탄해지기도 전에 쓰게 된 등단이라는 티아라는 너무 버겁고 무거웠다. 게다가 코로나로 팬데믹 상황을 겪으며 더 깊은 동굴을 팠다. 내적으로 그늘이 지면 외적인 어려움도 함께 따라오는 법. 거센 파도를 피하고 나니 더 큰 파도가 덮치는 격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먹구름이 걷힐 때 보면 하늘 한 쪽이 밝아지는가 싶다가 금세 온 하늘이 환해진다. 내게도 그랬다. 오랜만에 일 때문에 만난 나의 첫 글선생님이 이야기 끝에 문득 생각났다는 듯 포항문화예술지원사업에 신청해 보라고 했다. 그 버겁고 무거웠던 ‘신춘문예 등단’이라는 티아라가 많고 많은 지원 조건 중에 유일했다. 문화재단에서 손을 잡아주었다. 그래서 첫 동화집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인형 병원’이라는 동화집이 궁금하다.

△노트북에 작품 파일이 늘어날수록 갑갑했다. 포항문화재단에서 작품 파일을 정리할 기회를 줬다, 우선 따뜻한 이야기들을 골라 세상에 내놓기로 했다. 등단작을 포함해 6편의 동화가 수록되었다. 문화재단의 신청서에는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들’이라는 가제를 달았는데 이번 동화집에는 진짜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마음으로 읽히는 것들 말이다.

 

전은주 동화작가
전은주 동화작가

-동화집에 수록된 작품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하면.

△세대와 상관없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의자’는 어쩔 수 없이 폐지 모으는 일을 하게 된 할머니와 손자가 어려움을 씩씩하게 헤쳐 나가는 이야기다. ‘인형병원’은 오랫동안 인형 수선을 해 온 할머니와 추억이 담긴 인형을 들고 오는 손님들과의 이야기다. ‘김명작, 우리 아빠’는 할머니가 사셨던 시골집에 들어와 살게 된 가족의 이야기다. 아빠는 다락방에서 어릴 적 꿈인 글쓰기를 시도하고…. 다락방의 주인 행세를 하던 동화 속 주인공들과 아이가 아빠에게 글쓰기 비법을 알려주는 이야기다. ‘할머니의 꽃시절’은 치매를 앓는 할머니가 기관사였던 할아버지를 마중하러 역으로 나가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는 이야기다. 그 외에도 ‘지우개와 빨간 펜’‘오어지의 봄’ 이 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작품 속에 유난히 할아버지, 할머니가 많이 등장한다.

△맞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할머니로 대표되는 따뜻함이 그리워서 그럴 수도 있다. 그 따뜻함 이면에는 노년에 직면한 경제적, 정신적 어려움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내 부모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후자에 마음이 더 간다. 어려운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오랜 공부 끝에 이룬 교수직을 버리고 의사가 되겠다고 떠난 젊은 연구자가 있다. 나의 첫 교수님이었다. 스무 살, 어린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거룩한 결심을 하게 된 것이 불편한 몸으로 비를 맞으며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 가는 어르신을 보고서도 별 도움을 줄 수 없었던 자신을 돌아보고 나서라 했다. 어려움에 처한 어르신들을 뵈면 교수님의 얼굴도 성함도 생각나지 않지만 그날의 분위기는 오롯이 떠올라 오래 지켜보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글로 응원하는 것. 그래서인지 내 글에는 유독 힘겨운 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은.

△작가가 되는 꿈은 이미 이루었다.‘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은 새로운 꿈이 생겼다. 아이들에게 꿈은 이루어진다는 걸 증명했으니 새 꿈도 보기좋게 이뤄내겠다. 아이들과 읽고 쓰면서 책 속에서 오래오래 놀겠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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