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초등학고 일학년 첫 방학 숙제 중 하나는 태극기 그리기였다

자꾸만 일그러지는 원이 암만해도 속이 차질 않아

끙끙대고 있는 아들놈이 보기 딱했던지

공장 일을 마치고 오신 아버지 대뜸

밥그릇을 들고 오시더니

밥그릇 둘레 따라 원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

아마도 그날 이후부터였나 보다

뜨건 공깃밥과 국기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게 된 것은,

노동자들 분신 뉴스가 지나갈 때마다

멀쩡한 밥그릇으로도 자꾸 일그러져만 가는

방학 숙제를 여태도 끝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부분)

노동자들의 노동이 없다면 국가는 유지될 수 없다. ‘공깃밥’이 국가 기반인 국민의 삶을 지탱하기 때문에. 그래서 “공깃밥과 국기를 떼어놓고/생각할 수 없”다. 시인에게 이를 가르쳐준 이는 “공장 일을” 다니는 그의 아버지다. 하나 “노동자들 분신 뉴스가” 끊이지 않는 것이 한국의 상황이다. 밥그릇을 도화지에 대고 국기를 그리는 초등학교 일학년 “방학 숙제를 여태도 끝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