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영해 원구리 삼성(三姓) 동신목 느티나무와 경수당 향나무 노거수

영해면 원구리 마을 노거수들의 웅장한 자태.

영덕군 창수면 수리마을에서 사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며 전원생활을 한 지도 벌써 15년 훌쩍 넘었다. 영해에서 창수면 수리로 가는 농촌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뿌리줄기에 붙어있는 고구마처럼 길 따라 옹기종기 붙어있는 자연부락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정겹다.

마을마다 작은 마을 숲에는 당우와 함께 당산목이라 불리는 노거수가 있다. 주민들은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고 동제를 지낸다. 특히 영해면 원구리 마을 숲 당산목은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집으로 오가는 길목에 있는지라 오갈 때마다 들리곤 한다. 이제는 나의 중간 기착지 힐링 쉼터가 되었다.

 

600살 당산목 느티나무 세 그루
영양 남씨·무안 박씨·대흥 백씨
3개의 문중 단합·경쟁으로 관리
경수당 종택의 道 기념물 ‘향나무’
700살 건재함으로 고택 품격 UP
울릉도서 이식 됐다 전해지기도

 

숲속을 거닐면서 나무가 뿜어내는 산소를 마음껏 들어 마실 수 있다. 마을을 둘러보면서 아름다운 고택과 정원의 나무들을 감상할 수 있다. 덤으로 마을 앞에 펼쳐지는 넓은 들판은 여름에는 푸름으로 왕성한 기운을 느끼게 하고 가을에는 황금물결로 마음에 풍성함을 채워준다. 힐링하기에 원구리 마을은 안성맞춤의 장소가 아닐까 싶다.

원구리 마을은 낮은 언덕 자락에 터전을 잡은 마을로 넓은 들을 소유하여 예로부터 비교적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왔다. 주민들은 넓은 들판과 고래불 해변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숲을 조성하고 자연을 가까이했다. 어린나무들은 세월에 힘입어 아름드리 큰 나무의 무성한 숲으로 성장하여 휴식처를 제공했다.

또한 마을을 지켜주는 방패막이가 되고 아름다움과 품격을 높여주었다. 숲과 마을은 상생의 윈윈(win-win) 전략으로 자연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공존의 이치를 터득했다. 그들은 서로를 품고 살아가는 나무와 주민들이다.

숲속에는 많은 수종의 나무가 있지만, 주인공은 600살 되는 세 그루의 당산목 느티나무 노거수이다. 놀랍게도 당산목은 마을을 대표하는 영양 남씨, 무안 박씨, 대흥 백씨 삼 성씨의 단합과 경쟁의 시스템으로 묶어 놓았다. 삼 성씨는 당산목을 경배하면서 단합하고 때로는 선의의 경쟁을 했다. 그들은 힘을 모아 서원을 짓고 학문을 연마하고 정자를 지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향유하고 예와 학문을 숭상했다.

한 마을에 성씨별로 서원이 세 개나 지어지고 정자가 세워진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나라가 없으면 가문도 없다는 애국정신으로 남의록, 남경훈, 박세순, 백충언, 백사언 등 임란 공신 다섯 명이 모두 삼 성씨의 종손이면서 의병장으로 나라 지키는데 앞장섰다는 미담은 듣고 들어도 다시 듣고 싶다.

마을은 아니지만, 문중 간 화합의 장을 열어가고 있는 삼 성씨, 아산 장씨(蔣), 밀성 박씨(朴), 옥산 전씨(全)의 모임인 강선계(講先契)는 1391년경부터 지금까지 630년간 아름다운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마을 숲에는 소나무, 왕버들, 팽나무, 회화나무 등 많은 노거수가 있지만, 제단 앞에 있는 당산목 느티나무 세 그루는 600살 됨직하고 크기도 비슷하다. 제단 왼쪽 느티나무는 지상 50㎝ 높이에서 다섯 가지가 뻗어 하늘로 높이 솟아올랐다. 키는 21m, 몸 둘레 8m, 앉은 자리는 26m가 넘는다.

오른쪽 느티나무는 지상 1m 높이에서 네 가지를 뻗어 하늘로 높이 솟아올랐다. 가운데 느티나무는 조금 늦게 태어났는지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여 서쪽으로 45도 비스듬히 기울어 비켜나 자라고 있다. 양보와 경쟁의 질서를 조화롭게 지키면서 수백 년을 한결같이 평화롭게 숲의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또 한쪽에서는 왕버들과 소나무가 형제처럼 함께 부대끼며 묘한 동거를 하고 있다. 곧은 절개의 소나무가 그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터이고, 왕버들 역시 큰 덩치와 힘자랑을 멈추지 않을 터인데 앞으로도 계속 사이좋게 공존해 갈 것인지 궁금하다. 저녁 햇살이 몸을 낮춘다. 대지에 엎드린 지피식물이 어둠의 이불이 펼쳐지기 전 마음껏 만찬을 즐긴다.

마을의 무안 박씨 경수당 종택에는 아름다운 향나무 노거수가 건재하게 살아가고 있다. 1570년에 건립한 99칸의 종택 대청에는 퇴계 이황이 쓴 ‘경수당’ 현판이 있다. 그보다 나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124호 향나무에 더 눈길이 끌렸다. 나이가 무려 700살이 훌쩍 넘었다. 키는 6m, 몸 둘레는 3m이지만, 앉은 자리 둘레는 4.7m나 되었다. 울릉도에 자라고 있는 약 300년생 향나무를 경수당 건립자인 박세순(朴世淳)이 이식하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향나무는 무미건조한 고택의 품격을 높여주고 있다. 향나무 노거수 한 그루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는 용을 그리고 눈동자를 찍는 것과 같은 화룡점정이랄까 금상첨화란 생각이 든다.
 

전통은 만들기도 어렵고, 지키는 것, 또한 어렵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노력 없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지키려는 의지와 노력이 합쳐질 때만 가능한 일이다. 아직도 세 문중이 집성촌을 이루고 오순도순 살아가면서 우리의 전통문화인 동신제를 매년 정월 대보름날 지내고 있다. 신의 경지까지 올려놓고 경배하면서 나무를 보호하고 사랑하는 민족은 세계사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나무 사랑, 나아가 자연 사랑으로 이어지는 전통 민속문화인 동신제가 차츰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원구리 마을의 ‘영양 남씨, 무안 박씨, 대흥 백씨’ 삼 성씨는 오늘날까지 동신제를 지내며 맥을 이어오고 있다. 마을의 단합과 결속의 중심인 된 마을 숲의 수목들이 주민들과 오래도록 장수하며 전통의 맥을 이어가길 기원해 본다.

귀향한 남성근씨가 들려준 원구리 마을 동신제 이야기

마을 숲속에 있는 당산목 주변을 깨끗이 청소한다, 마을 삼 성씨 어른들이 모여 앉아 왼쪽 세끼 줄을 꼬아 만든 금줄을 악귀와 부정을 막기 위해 제관들의 집에 두른다. 그리고 마당과 길에 황토를 뿌린다. 이때부터는 외부 사람들은 드나들 수 없다. 출입을 막는 것은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마을 삼 성씨에서 각각 한 명의 제관을 선출한다. 제관으로 선출된 세 명은 1년 동안 흉사 등에 출입하는 것을 금지하였으나 지금은 한 달 보름 정도로 줄었다. 그동안 나쁜 생각도 하지 않고 몸과 마을을 정갈히 가다듬는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 하루 전날에 목욕재계하여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한다. 목욕은 용당 샘물을 이용하였으나 지금은 일반 목욕탕을 이용한다.

영해 시장에 가서 동제에 사용할 제수를 마련한다, 먼저 생선가게에서 문어, 가오리 등을 산다. 그리고 과일 가게에서 사과 배 등을 산다. 마지막으로 떡을 준비한다. 제물은 크고 좋은 것을 골라 흥정하지 않고 달라는 대로 돈을 주고 산다. 소지를 준비하고 제기를 닦는 일은 제관만이 하는 일이다. 제수는 어물 위주로 하고 육고기는 닭고기만 사용한다. 제관과 마을 주민이 제당으로 가서 행사를 준비한다. 제물을 제단에 놓을 때는 바깥에서 안쪽의 순서로 놓는다. 이렇게 모든 준비는 끝이 난다.

동신제를 올리는 순서는 먼저 제관과 참석자가 절을 하고 신을 맞이하는 참신을 한다. 그리고 초헌관이 땅에 있는 신이 세상으로 올라오라는 신호로 세 번 술을 따른다. 초헌관은 다시 절을 하고 참석자 모두 엎드린다. 그리고 축문을 읽는다. 아헌관이 두 번째 잔을 올리고 절을 한다. 종헌관이 마지막으로 잔을 올리고 절을 한다. 부복하고 산신제는 모든 참석자가 절을 하고 축문을 태운다. 신과 주민, 출향 인사 순으로 소원을 빌며 주민의 이름을 기재한 소지를 태워 하늘로 날려 보낸다. 모든 음식을 조금씩 잘라서 신을 위하여 주변 땅에 묻는다. 그리고 음복한다. 이렇게 동신제는 끝이 난다. 제관은 무릎도 풀고 옷도 벗을 수 있다. 오늘 있었던 동제 이야기를 나눈다.

정월 대보름 아침에는 금줄을 벗기고 마을 사람 맞을 준비를 한다. 동신제 경비 등 결산보고를 한다. 주민들의 화합 시간을 갖는다.

 

/글·사진=장은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