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문경수필가
배문경 수필가

친구들과 함께 숲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짐을 풀고는 숙소를 나서자 오후의 햇살이 맞은편 산으로 기운다. 노을의 황금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산 입구의 문을 열고 좁은 길로 들어서자마자 공기가 다르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폐의 가장 아래쪽까지 숲의 향을 끌어들였다. 편백의 신선함이 몸 끝까지 가닿기를 바라며 들숨으로 횡격막을 최대한 늘였다. 하지만 아무런 냄새도 느끼지 못했다.

바닥에는 잣나무 열매가 떨어져 곰팡이가 피었고 측백나무와 잣나무 잎이 수북하게 쌓였다. 낙엽을 밟으며 올라가자 편백나무들이 훤칠하게 하늘을 향해 팔을 뻗었다. 시냇물을 건너 오르막을 향해가자 숲은 가슴팍을 열고 우리를 받아들였다.

지난해 코로나에 걸리고 일주일간 애를 먹었다. 그리고 확연히 그 증거를 남겼으니 냄새 맡기와 맛 느끼기라는 감각기관을 잃었다. 몇 주 혹은 서너 달이면 좋아지리란 기대는 물 건너간 것 같았다. 1년이 지나도 감각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조금 아주 조금 나무의 청량한 향이 폐부로 밀려 들어왔다. 아…. 다시 후각을 얻은 것일까. 깊게 짧게 깊게 길게 숨을 내쉬고 들이쉰다. 사이다처럼 시원하고 싸한 기운이 콧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편백나무 아래에는 넝쿨식물이나 다른 나무들이 자랄 수 없다. 피톤치드 때문이었다. 식물로부터 방산(放散)되어 주위의 미생물 등을 죽이는 작용을 하는 물질의 총칭이 파이톤사이드(Phytoncide)이다. 그래서 히노키로 만든 다양한 제품이 건강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팔린다.

그 피톤치드를 찾아 이곳을 찾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난다고 했다. 나 또한 청량감으로 폐부에 시원한 공기를 선사하는 편백나무 숲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편백나무는 두 종류이다. 몸피가 매끈한 것은 화백나무이고 목재로 사용되었다. 표피가 거친 것은 측백나무라고 하며 오일이나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그래서 가려움에 좋다는 진액 오일과 두피에 좋은 샴푸를 샀다. 피부보다 모공이 다섯 배나 커서 평소 사용하는 샴푸로 인해 상한 두피를 달래보려 한다. 진액을 손에 살짝 묻혀 흡입하자 저 깊은 폐부에까지 깊이 파고드는 시원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

숲의 입구에 지어둔 오육십 년 된 옛집을 개조해서 만든 펜션과 편백나무를 이용해 지은 펜션 사이에서 다섯 여자가 선택한 것은 개조한 집이었다.

숲과 집이 온통 편백이었다. 이제 삐꺽거리기 시작하는 나이이니 건강에 좋다는 것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렵게 예약하고 건강을 찾는 이 계획을 선택한 것이었다. 편백나무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란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함께 한다.

여름에는 키가 크고 겨울에는 부피가 커진다는 나무들, 육십을 바라보는 여자들의 삶도 키는 줄고 부피만 느는 시간이다. 힘겨운 추위를 이겨낼 때마다 내면에 좁은 나이테가 만들어지고 삶의 얼룩을 견뎌내고 따뜻해지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아픔도 슬픔도 질환으로 힘들어 하는 우리 모두가 저 나무들처럼 비바람이 불어도 나뭇잎이 떨어지고 추위가 와도 견뎌내는 힘이 이해와 사랑과 보살핌이란 것을 안다. 서로를 바라보며 주름진 얼굴 사이로 진액 같은 웃음이 흐른다.

나무숲 위로 보름달이 떠올랐다. 나무는 그림자를 길게 늘이고 그 사이로 신선한 바람이 흐른다.

다섯 여자가 숲을 바라보았다. 1888년 2월 아를에 도착한 직후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편지로 “나는 편백나무와 함께 별이 총총한 밤이 필요하다. 그런 밤은 아마도 잘 익은 밀밭 위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엔 정말 아름다운 밤이 있다”라고 썼다. 우리 또한 보름달 옆으로 그 언제보다 밝게 빛나는 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함께 외쳤다.

“별이 빛나는 숲속에서 아름다운 하늘에 빠졌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