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포항 두원리 와송(臥松) 노거수

와송(臥松) 노거수는 우리 민족성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민족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기질을 민족성이라 말한다. 단일 민족인 우리 한민족은 절개와 지조가 있으면서 청초함을 갖추었다.

척박한 토양 환경에도 끈질기게 살아가는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이 한 줄의 가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고난을 극복하고 세계사에 우뚝 선 나라로 국제사회에 미담의 주인공으로 회자 되고 있다. 송죽매란(松竹梅蘭)은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사군자로 우리 조선의 선비들이 즐겨 심고 노래한 것을 보더라도 그렇다.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늘 푸른 소나무는 화려하지 않으면서 깨끗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청초하기까지 하니 우리 민족성과 많이 닮았다.

 

340년 불굴의 의지로 지켜낸 삶
고난 극복하고 세계사에 우뚝 서
국제사회에서 미담이 되고 있는
우리 민족성과 많이 닮아 있어

굽히지 않는 절개와 지조로
젊음의 시간들을 살아왔다면
곧은 줄기 불그스레한 모습은
엷은 미소띤 할아버지 얼굴 같고
연룬 묻어나는 가지의 곡선에서
은은함과 부드러움 품어내

젊음의 기개처럼 젊은 소나무는 부러져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 절개와 지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노거수가 되면 살아온 연륜만큼이나 지혜로움을 보여준다. 곧은 줄기의 불그스레한 모습은 엷은 미소를 띤 온화한 할아버지 얼굴 같다. 가지의 곡선은 세월의 연륜에서 빚어진 은은함과 부드러움, 공간 조화의 미덕을 보여준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과 함께 동고동락한 반려자로 민속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삶을 보아도 그렇다. 할머니는 마을 당산나무인 소나무에 누구보다 먼저 새벽에 들러 아들딸 낳아달라고 소원했다. 그리고 아들딸 낳으면 할아버지는 집 사립문에 금줄을 치고 솔가지를 걸고 그해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리고 죽으면 소나무로 만든 관속에서 마을 뒤 선산의 솔밭에 묻혔다. 우리 조상은 소나무로 시작해 소나무로 끝나는 인생사라 해도 좋을 것 같다.
 

포항시 장기면 두원리 386번지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소나무 노거수는 절개와 지조에 더하여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1992년 9월 14일 보호수로 지정하여 나라의 보호를 받고 있다. 나이는 340살이며 키는 15m, 가슴둘레는 3m 넘는다.

뿌리 부근에 두 줄기의 형제가 나와 자랐는데 그중 한 줄기가 태풍에 밑둥치가 부러져 꺾이어 드러누운 채 살아가고 있다.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라 주민 누구도 가져가지 않고 자연 방치되었다. 소나무는 생명줄을 놓지 않고 죽을힘 다해 버티어 살아남았다. 아마 혼자 힘으로는 버티어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형제의 뿌리가 영양분과 물을 공급해 주었으리라. 한 형제가 넘어졌으니 일으켜 세우지는 못하더라도 뿌리에서 도왔을 것이다. 형제의 도움으로 일어나지 못하고 비록 누워서 살아가고 있지만, 건재한 모습이 오히려 어느 소나무보다 진한 감동을 주었다.

부러져 꺾어진 부분에는 벌레나 균의 침입으로 인하여 부식되었다. 그러나 삶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보통의 소나무라면 벌써 숨통이 끊어졌을 터인데 그 강인한 생명줄을 부여잡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다기보다 아름답게 여겨졌다. 참으로 기이하다고 할까, 경이로운 모습도 모습이지만, 살려는 강인한 의지력에 놀랄 뿐이다.

몸은 비록 장애일지라도 그의 꿈과 이상은 푸른 하늘을 향하고 있음을 그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다. 세월이라는 시간만이 만들 수 있는 자연의 걸작품이다. 누워서 살아간다고 와송(臥松)이라 부르고 싶다. 끈질긴 생명의 힘을 보여주는 불굴의 의지를 지닌 와송 노거수는 우리에게 귀감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신문 기사에 산주가 아름다운 소나무 노거수를 팔아서 주민들이 반발하는 기사를 읽었다. 원상복구 문제까지 번진 일이다. 아름다운 소나무는 정원의 조경수로서 최고의 나무라면서 값을 따지지도 않고 사는 경우가 흔히 있는 것 같다.

조경업자는 산이든 들이든 어디에 있든지 상관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사려고 한다. 물론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고 나무를 감상할 수 있는 공원이라면 그 또한 나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돈이 많다고 해서 개인의 정원에 함부로 사서 심는다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라 생각이 아닐까. 여기 와송 노거수는 절대로 옮길 수 없다. 주민들이 허락하지 않겠지만, 어느 조경업자도 이식하여 살릴 재간은 없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손을 댄다면 와송 노거수는 지금까지 지켜온 절개와 지조를 죽음으로 증명해 보일런지도 모른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성과 많이 닮았다. 오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은 동북아 작은 한반도에서 끊어질 듯하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그 맥을 이어왔다. 이웃 나라의 끊임없는 간섭과 침략에도 굳건히 살아남았다.

강대국의 말발굽에 짓밟혀 가면서도 아픔을 참고 살아남았다. 제국주의 아래 씨를 말리려는 민족 말살에도 굴하지 않고 고초를 참으면서 맥을 이었다. 한반도를 붉게 물들이려 하는 세력의 집단으로부터도 푸른 기운을 싹틔우며 자리를 지켰다. 무소불위의 일부 세력의 권력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온몸으로 저항했다.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 자유와 민주, 산업화에도 늘 그 중심에 섰다. 금융위기도 빠르게 극복하고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도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고 슬기롭게 극복했다. 곧은 절개와 늘 푸른 소나무처럼 불멸의 민족으로 지구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고 있다.

 

포항시 장기면 두원리 386번지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와송.
포항시 장기면 두원리 386번지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와송.

우리민족을 닮은 소나무

한낮이 기울 때 가을 햇살로 인해 소나무 노거수의 온전한 전체 모습을 사진기에 담기에는 어려웠다. 겨울, 그 모두가 잎을 떨구고 나목으로 추위에 떨고 있을 때 소나무는 그때야 자신의 푸름을 자랑한다. 특히 눈이 내린 날에 더욱더 푸름이 빛을 발한다.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겨울 소나무 노거수를 본다면 그 누구도 감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흰 눈과 푸른 소나무의 풍경은 우리 민족의 모습으로 겹쳐 보인다. 흰옷을 좋아하고 즐겨 입으며 푸른 기상을 닮으려는 우리 민족이 아니었던가. 주변 다른 나무를 적절히 제거하고 불굴의 의지를 상징하는 와송 노거수를 천연기념물로 격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

/글·사진=장은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