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섭

가끔은 풍뎅이가 날아오는 것이다 날아오는 풍뎅이는 향기를 물고 오는 것이다 저녁의 문 뒤에서 서성이던 사람들은 꿈결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축축한 기억에 젖어 그늘이 된 여자는 우두커니 물드는 것이다 비 그치고 이미 물든 저녁을 그는 왜 날아왔는지 보랏빛으로 물든 저녁에 어떻게 향기를 입히는지 가끔은 풍뎅이가 되어보는 것이다 풋잠 속을 유영(遊泳)하듯 라일락은 흩날리고 여자를 물고 풍뎅이가 날아가는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절뚝거리는 것이다

이 시 속의 ‘여자’는 삶에 지쳐 있다. 우리가 그렇듯이. 그녀는 “축축한 기억에 젖어 그늘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런 삶에도 ‘가끔은’ “향기를 물고” “풍뎅이가 날아오”기도 한다. 그 향기에 “우두커니 물드는” 여자. 풍뎅이가 그녀를 물고 날아가고, 그녀는 꿈꾸듯 “풋잠 속을 유영”하며 “풍뎅이가 되어”본다. 이 비행이 쾌활한 것은 아니다. 시인이 이 비행을 삶의 절뚝거림으로 표현하듯이, 슬픈 ‘유영’인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