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경

비 내리는 밤길 걷다가

불 켜진 버스 정류장에서

내 뒤를 따라오는

작은 아이를 보았지

잠시, 멈추어 서서

가로등 불빛에 난사되는

신기루 같은 아이에게

말, 걸어 보았네

그는 아무 말 않고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홀로 걷는 내게 보폭을 맞추며

중년까지 따라올 기세네

시인은 중년에 다다른 현재까지, 자신이 잊고 있었던 존재가 자신을 그림자처럼 언제나 쫓아오고 있었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는다. 그 존재는 ‘작은 아이’로, 아마 어린 시절의 시인 자신일 테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망각 속에서도 존재해 왔으며, ‘신기루’ 같은 그 어린 아이는 “내게 보폭을 맞추며” 따라와 주었다는 것, 지금 삶을 살아가는데 지쳐 있다면 그 아이를 찾아 “말, 걸어 보”라고 시인은 우리에게 권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