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을 그리다 어반 스케치 여행
⑮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

아침 든든히 먹고 신발 끈 다시 꽉 묶고

길을 나서면 거기서부터 순례다.

날숨 가다듬고 들숨 잠잠할 때

파도소리 갈매기 소리에 실려

오래 묵은 이야기가 들려온다.

내 고향 땅에 청포도 알알이 익어가는 시절에

고달픈 몸으로 찾아올 손님을 기다린 시인 이야기

마침내 그 손님 맞이하여 함께 살아가는 오늘도

연둣빛 포도알이 거리 가득 열매 맺는다는 이야기

 

독수리바위
독수리바위

신라시대 연오랑세오녀 부부 해초 뜯으며 살 때

연오랑이 신이한 바위 타고 바다 건너 왕이 된 이야기

그래서 해와 달이 시들시들 빛을 잃어버렸을 때

세오녀가 고운 비단으로 하늘에 빛을 수놓은 이야기

갈매기 장미꽃 잠자리 코스모스 모두 모아

하얀 벽 캔버스 삼아 물감으로 새겨 놓은 거리에도

한 폭 한 폭의 그림마다 소복이 내려앉은

세월의 흐름에도 사라지지 않는 동화 같은 이야기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나무 데크 위로 걸어가면

용왕과 선녀가 사랑을 나누었다는 하선대와

서 있어서 선바우, 검어서 먹바우……

무수한 바위들 제각기 이름을 가지고 살아나는 이야기

기암절벽에 새겨진 태곳적 비밀 이야기와

암벽의 아홉 구멍에서 승천한 아홉 마리 용 이야기

그렇게 새겨진 고대의 온갖 이야기 위에서

오늘도 그물을 씻는 한적한 어촌 마을 이야기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이야기가 살아나는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이야기 순례길이다.

글 : 이가은(서울대 국문과 박사 수료)

임주은 1982년 포항에서 태어났으며 대구가톨릭대 공예과를 졸업했다. 개인전 2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아트페어에 서양화 작가로 참여했다. 현재 포항문화재단 이사, 포항청년작가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포항지부, 경북청년작가회 등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