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영 수필가
정미영 수필가

영일대 호수공원에 가을이 깊다. 붉게 물든 나뭇잎을 보며 물가를 걷고 있으니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긴다. 아침노을 빛이 스며든 호수의 색채가 내 마음으로 옮겨와 은은하게 번진다.

얼마 전, 지인이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의 저서를 읽었다고 했다. 올레길은 제주도 방언으로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데, 서명숙 이사장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나서 구상한 것이다. 책을 읽고 난 뒤에 올레길 코스를 모두 걷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적인 여건이 충족되지 않아 생각을 접었단다.

그러던 어느 날, 해파랑길부터 걸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해파랑길은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르른 바다색인 파랑, ~와 함께라는 조사 랑을 조합한 합성어다.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을 의미한다. 지인은 본인이 거주하는 포항의 구룡포 앞바다를 떠올리는 순간 곧장 실행에 옮겼다.

포항과 울산에 위치한 해파랑길을 벌써 몇 코스나 걸었단다. 혼자 걸으니 어촌의 고즈넉한 풍광과 사람들을 온전히 눈에 담을 수 있어 좋고,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행복하다며, 창공에 반짝이는 햇살처럼 새뜻하게 웃었다.

지인을 보며 최초의 불교 경전인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수행자가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으려면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묵묵하게 자기만의 걸음으로 걸어가야 한다. 나는 지인 또한 혼자 걷는 시간에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자신이 소중한 사람임을 재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어느덧 나는 인생시계의 가을에 머물고 있다. 봄, 여름의 계절에 혼자라는 낱말을 떠올리면 외롭다가 연상되었다. 그 감정에 휘말리기 싫어 대부분 친구나 가족 등 누군가와 함께했던 기억이 있다. 오죽하면 학창시절에 즐겨 불렀던 광고 음악이 ‘오리온 초코칩 쿠키’였다. “초코가 외로워 쿠키를 찾네. 쿠키가 외로워 초코를 만났네.” 노랫말이 마음에 들어 용돈을 모아 과자를 자주 사먹었던 추억이 있다.

이제는 혼자라는 낱말을 떠올리면 독립이 연상된다. 독립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낱말인지 체득했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자녀 교육 강의를 하러갈 때, 대부분 부모들은 자녀 교육의 목표를 내 자녀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자녀 교육의 목표는 독립이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부모가 존재하지 않을 때를 대비해 사랑하는 내 자녀가 스스로의 인생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홀로서기를 준비시켜야 결국은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연한다.

나는 독립의 첫 걸음으로 자녀에게 혼자 걷는 시간을 줘보라고 권하고 있다. 가까운 거리에 심부름을 시켜본다든지, 집 앞을 산책하고 오라든지, 자녀가 자신을 믿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무 그늘 아래에 서 있으니 바람이 불어온다. 제법 쌀쌀했다. 나는 잔소름이 오스스 돋은 팔뚝을 손으로 쓸며, 그윽하게 둘레길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호숫가에 좀 더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모처럼 시간이 걸리더라도 산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둘레길을 걸을 것인지, 잠시 고민한다.

산 위에서 호수로 다시 바람이 불어온다. 산길에는 낙엽이 제법 두텁게 쌓여 있겠지? 문득 낙엽을 밟고 바스락 소리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연달아 니체가 인생 좌우명으로 삼았던 괴테의 명언도 떠오른다. ‘타협하지 말고 온전히 자신의 모습으로 아름답고 당당하게 살아라.’ 나는 문구를 활용해 스스로에게 들려준다. ‘고민하지 말고 온전히 자신의 모습으로 아름답고 당당하게 걸어라.’ 자꾸만 혼자 걷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만든다.

둘레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나뭇가지가 무성하다. 가만히 살펴보면, 나무들도 저마다 혼자서 나뭇잎을 떨어뜨리며 겨울나기를 준비한다. 혼자 걷는 시간은 나무에게도 필요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