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시내에서 만난 석양.

낯선 환경을 두려워하거나 귀찮아하지 않는 성향, 거기에 더해 독신이라는 비교적 자유로운 처지 때문인지 주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은 곳을 여행한 편에 속한다.

30대 초반부터 시작해 20년 넘게 적지 않은 나라를 여행했다. 그런 과정과 경험 속에서 몇 가지 깨달은 게 있는데, ‘사람 사는 모습이란 게 어디나 비슷하구나’란 것도 그중 하나다.

지난 9월 중순. 뒤늦은 휴가를 일본 후쿠오카로 갔다. 거기서 가장 인상적인 여행지가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天満宮)였다. 어떤 곳이냐고? 이 물음엔 ‘위키백과’를 인용해 답한다.

“일본의 유명한 학자인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학문의 신으로 모신 곳이다. 일본 국내에서는 매년 합격이나 학업 성취를 기원하는 참배객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경내에는 다양한 꽃이 피는데 특히 매화인 ‘도비우메’는 다른 매화보다 먼저 피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이곳 명물로 ‘우메가에 모치’라는 떡이 있는데 이 떡을 먹으면 병마를 물리치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한다.”

 

학문의 신 모신 ‘다자이후 텐만구’
매년 학업성취 기원 참배객 북적
고득점 만들어 준다는 황소동상 
오랜 세월 손길 받아 반질반질해
MZ세대에 인기라는 돈코츠라면
영화서 본 장어덮밥 먹는 재미도

후쿠오카 시내에서 버스나 전철을 타고 짧은 시간이면 갈 수 있는 이 신사(神社)엔 일본인은 물론, 한국인과 중국인, 서양 관광객들이 1년 내내 몰린다고 한다. 풍광이 좋고, 이른바 ‘SNS에 잘 알려진 맛집’이 흔해서다.

기자가 다자이후 텐만구를 찾았던 날도 수백 명의 여행자들로 신사 안과 거리, 식당이 붐볐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린 곳은 커다란 황소의 동상 앞이었다.

“신사 입구에 만들어진 황소 동상을 쓰다듬으면 입학시험이나 입사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는 풍문이 전한다고 했다.

오랜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수험생과 그들 부모가 손바닥으로 정성 들여 쓸어댔는지 단단한 금속으로 제작된 황소의 등이 닳아서 반질반질했다.

자신의 자식이 열심히 공부해 세칭 명문 대학에 가서 입신출세하길 바라지 않는 부모가 세상에 있을까? 드물거나 아예 없을 듯하다. 그곳이 일본이건, 한국이건. 앞서 말했듯 ‘사람 사는 모습이란 어디서나 비슷’하니까.

 

다자이후 텐만구엔 소원 성취를 바라는 문구가 적힌 나무패가 많이 걸려 있다.
다자이후 텐만구엔 소원 성취를 바라는 문구가 적힌 나무패가 많이 걸려 있다.

▲“자식이 잘 되길”… 일본, 한국, 베트남 부모들 모두가 같은 마음

202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6일 치러질 예정이다. 코앞으로 닥친 입시. 수험생도 긴장하고 마음을 졸이겠지만, 그런 심정이 더한 건 학생의 부모들일 터.

지난 주말은 갑작스레 닥친 한파로 온 나라가 꽁꽁 얼어붙었다. 그럼에도 대구 팔공산 갓바위에선 두꺼운 옷으로 몸을 꽁꽁 싸맨 어머니 수백 명이 석불(石佛·관봉석조여래좌상)을 향해 절을 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왜였을까? ‘한국 지명유래집’이 이렇게 알려준다.

“멀리 서있는 부처에게 기도를 하면 한 번의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기복신앙지로 자리 잡은 갓바위는 전국적인 명성을 가진다. 특히 대학수능일을 전후해 전국에서 몰려드는 기도객으로 인해 정상부의 약 100여 평은 발 디딜 공간조차 마련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깨끗하게 잘 정돈된 하카타역 상가.
깨끗하게 잘 정돈된 하카타역 상가.

그렇다. 일본의 부모들이 신사에 가서 자녀들의 행복과 학업 성취를 기원한다면, 한국 영남 일대에 거주하는 부모들은 자식이 시험에서 원하는 성적을 받도록 해달라고 팔공산 석불에게 치성을 드리는 것.

이것들과 유사한 모습을 올봄엔 베트남 하노이에서도 봤다. 베트남 북부는 이른바 ‘한자문화권’이고, 하노이엔 공자의 사당(文廟)이 크게 자리해 있다. 동양과 서양을 불문하고 다양한 관광객들이 거길 찾는다.

베트남 왕조시대 과거(科擧) 합격자의 이름과 공적이 적힌 표지석이 여러 개 있는 하노이 문묘엔 붓글씨를 잘 쓰는 노인들이 소액의 사례금을 받고 아이들에게 글씨를 써주는 공간이 있다.

아들과 딸을 데리고 문묘에 온 부모들은 “재능과 인품을 두루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게 해주세요” 혹은, “이번 입학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게 해주세요”라는 의미가 담긴 문구를 부탁하고, 노인은 근사한 필체로 그걸 써주는 광경이 기자가 지켜본 30여 분 내내 이어지고 있었다.

국적과 인종에 무관하다. 세상 모든 부모는 자식의 미래가 밝기를, 제 아이가 선량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한국이건, 일본이건, 베트남이건 다른 어떤 나라건.

다자이후 텐만구를 다녀온 날. 후쿠오카 시내에서 홀로 저녁을 먹으며 건물 사이로 붉게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봤다.

그때, ‘부모가 어린 시절 자신에게 쏟은 정성과 눈물을 안다면 세상엔 악인(惡人)이 없을 텐데’란 생각을 한 것 같다. 그게 덧없는 망상일지라도.
 

기자의 입맛에 딱 맞았던 후쿠오카 민물장어덮밥.
기자의 입맛에 딱 맞았던 후쿠오카 민물장어덮밥.

▲후쿠오카, 돈코츠라면은 짜고 민물장어덮밥은 맛있다

지나치게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가 길어졌다. 여행에선 ‘사색하고 고뇌하는 시간’도 있지만, 몸과 마음의 감각을 즐겁게 해주는 시간이 더 많다는 게 기자의 믿음이다.

그래서다. 지금부턴 가볍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후쿠오카는 다른 어떤 음식보다 ‘돈코츠라면’이 유명하다. MZ세대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몇몇 돈코츠라면 가게는 1시간 가까이 줄을 서야 입장이 가능할 정도였다. 대체 돈코츠라면이 무엇이기에.

돈코츠는 ‘돼지의 뼈’를 의미하는 일본어. 그러니, 돼지 뼈로 육수를 만들고 갖가지 부수적 재료를 면발 위에 얹어 먹는 게 돈코츠라면이다.

세상 모든 사람의 입맛이 똑같을 수는 없다. 제아무리 100인 중 99인이 엄지를 치켜세우는 ‘맛있는 돈코츠라면’이라 해도, 한두 사람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수 있는 게 당연한 법.

기자가 그랬다. 제법 긴 시간을 기다려 유명세를 떨치는 가게에서 돈코츠라면을 먹었을 때 깜짝 놀랐다. 맛있어서는 아니었다. 이런 혼잣말을 했으니.

“왜 이렇게 짠 거야? 만들다가 소금통을 쏟았나?”

절반도 먹지 못하고 젓가락을 놓았다. 그럼에도 같은 메뉴를 주문한 옆 테이블의 젊은 커플은 면발은 물론, 국물까지 깔끔하게 비워내고 있었다.

돌아와 일본 여행을 수십 차례 다녀온 후배에게 물어보니 “원래 후쿠오카 음식 간이 한국보다 강해요”라는 답을 들려줬다. 그래서였을까? 조리사가 실수한 게 아니고?

기대 이하의 음식이 있다면, 당연지사 기대 이상의 음식도 있기 마련.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4박5일의 후쿠오카 여행에서 가장 만족스런 식사를 즐긴 건 민물장어덮밥을 주문했을 때였다.

 

후쿠오카에서 맛본 돈코츠라면.
후쿠오카에서 맛본 돈코츠라면.

일본 영화감독 이마무라 쇼헤이(1926~ 2006)의 작품 중에 ‘우나기’란 것이 있다. 우나기는 ‘뱀장어’란 뜻의 일본어.

20대 때 본 그 영화에 깊은 밤 장어 낚시를 하는 외로운 사내가 등장한다. 그가 홀로 먹던 장어덮밥이 참 맛있어 보이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이번 후쿠오카에서 먹었던 장어덮밥은 ‘나 홀로 여행자’의 외로움을 달래줄 정도로 일품이었다. 향기롭게 장어에 배어든 양념과 혀 위에서 그대로 녹아버릴 정도의 부드러움, 함께 주문한 연어알의 풍미까지 좋았으니까.

만약 다시 후쿠오카에 가게 된다면 첫날 저녁 식사는 무조건 잊을 수 없는 ‘미각적 즐거움’을 선사한 조그만 민물장어덮밥 가게에서 하기로 마음먹었을 정도다. 이제 먹는 이야기는 이쯤에서 멈추고.

후쿠오카 여행의 백미로 손꼽히는 게 ‘나카스 강변 포장마차의 밤’이다. 다음 회에선 바로 그 포장마차 거리에서 만난 한국과 일본의 20~30대 청년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싶다. (계속)

/사진 제공: 홍성민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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