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보경

눈이 내렸다. 첫눈이다. 첫눈, 함박눈

눈은 쌓이고 쌓이고, 쌓여서 눈부시게 하얗다 두께를 가졌다 밟으면 폭폭 찍히는 발자국

누구의 발자국일까 일자로 줄지어 찍힌 이런 모양, 길고양이나 노루일 거라고 생각했다

부드럽게 차가운, 차가우면서 따뜻한 흔적을 보며 우리도 자꾸 걸어갔다.

누구도 먼저 말이 없었다

첫눈은 계속 쌓였고, 쌓여서 눈부셨고 우리는 빛나는 그늘과 우리를 따라오는 그림자를 보았고 자꾸만 폭폭 찍히는 발자국을 보았다

나무마다 목도리처럼 그늘을 두르고 서서 귀 기울여 새의 노래를 들었다

당신도 허밍으로 낮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지금은 그것만 생각난다

대개 첫사랑의 기억은 특정한 이미지들로 집중되어 현상한다. 위의 시가 보여주듯이 말이다. 첫눈이 오고 둘이 함께 “폭폭 찍히는 발자국”을 뒤로 남기며 “자꾸 걸어갔”던,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흔적”이 남아 있는 기억. “새의 노래”가 들리고 그늘이 빛났던 이미지들. 이 모순들이 아름답게 응축된 이미지들은 한편으로 첫사랑의 기억에 따라오는 슬픔을 환기하기도 한다. 첫사랑은 대개 잃어버리는 사랑이니까.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