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입동(立冬)이었던 11월 8일 된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올해 들어 처음 내린 서리였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마당에 나선다. 휴대전화 사진기로 루드베키아 노란 꽃과 이파리, 망초와 머위 큰 잎에 내려앉은 서리를 담는다. 불과 며칠 전 반바지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던 청년들이 적잖았는데, 순식간에 일기(日氣)가 급변한 것이다.

지구 온난화의 폐해가 세계 전역을 휘감고 있는 시절의 난맥상을 우리도 확연하게 경험하고 있다. 늦가을에도 모기가 극성을 부리고, 오래전에 사라진 빈대까지 출몰한다. ‘팬데믹(pandemic)’에서 따온 ‘빈데믹’이란 신조어가 나왔으니, 한국인들의 응용력은 그야말로 세계 최고다. 특허 능력은 없지만, 실용신안 면(面)에서는 명불허전(名不虛傳) 최고다.

마침내 겨울이 오긴 온 것이다. 입동 당일에 된서리가 왔으니, 24절기 가운데 하나는 멋지게 맞췄구나, 하는 생각이 찾아든다. 사흘이 지난 11일 아침에도 된서리가 내려 초록의 잔디가 하얗게 채색된다. 시절의 변화에 가속이 붙는 양상이다. 차가운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 불원초(不願草)를 하나둘씩 뽑다가 아연 놀라고 만다.

잔디 위에 사마귀가 잠자듯 고요하다. 미동도 없기에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려 본다. 그래도 움직임이 없기에 살펴보니 엎드린 채 죽어 있다. 간밤에 부쩍 내려간 냉기를 견디지 못해 이 세상과 작별한 것이다. 집이 없는지, 혹은 집으로 가는 길에 죽었는지 모르지만, 사마귀는 푸르른 하늘과 새털구름과 햇빛과 바람 아래서 생을 마감한 게다.

사마귀의 마지막을 동행한 것은 무엇이며, 그 순간 사마귀를 찾은 상념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당랑거철(螳螂拒轍)’이란 고사성어로 친숙한 사마귀가 겨울 초입에 허무하게 세상과 작별하니 마음이 제법 쓸쓸하다. 한여름에 당당한 자세로 나를 향해 앞다리를 곧추세우던 녀석들의 자태가 눈에 밟힌다. 제 분수를 알게 되면 녀석들은 우울증에 걸릴지도 모른다.

죽음과 소멸에는 허전함과 아쉬움과 쓸쓸함이 동반한다. 지금부터 53년 전 오늘 1970년 11월 13일 대구 출신의 스물두 살 청년 전태일이 청계천에서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외치면서 분신(焚身)을 감행한다.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에 살면서 동료 노동자들의 비인간적인 처우를 개선하고자 싸웠던 전태일! 그는 자신의 외침에 아무런 반향도 보이지 않은 정부와 업주들에게 가장 처절한 형식의 죽음으로 항거함으로써 부당함을 고발한 것이다.

그가 세상을 버린 지 반세기가 가까워진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숱한 정치적 격변과 예기치 못한 경제위기를 극복하면서 이른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기에 이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1천100만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엄혹한 노동조건 속에서 가까스로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더욱이 우리는 20:80의 사회에서 1:99의 부도덕한 사회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사마귀의 죽음이 불러온 상념이 전태일과 노동자들 그리고 사회 전반의 부조리와 모순에 이른다. 언제나 우리는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을 환하게 맞이할 수 있을까?! 그날이 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