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경주 왕신리 공손수(公孫樹) 은행나무

어릴 적 초등학교 다닐 때이다. 교실은 부족하고 학생은 넘쳐나서 오전 오후반으로 나뉘어 수업했다. 때로는 야외에서 하나, 둘 구령을 붙이며 선생님 따라다니며 학교 운동장 나무숲 그늘에서 공부했다. 책도 공책도 연필도 필요 없었다.

선생님의 몸짓과 말씀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부모님과 어른들에 대한 예절을 하나둘 배웠다. 바람이 불어 운동장 흙먼지를 덮어쓰기도 했지만, 그런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산이나 들로 돌아다니면서 흙과 나무와 노는 것이 일상생활로 자리 잡혔기 때문에 아무런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다.

 

안동 권씨 시조이자 고려개국 공신

권행 선생과 후손 배향한 ‘운곡서원’

동쪽 계곡 용추대 위 정자 ‘유연정’은

370년 훌쩍 넘긴 노거수와 ‘한 세트’

거침없이 자란 30m 높이에 둘레 6m

어른 네 사람이 팔 벌려 안아야 할 정도

앉은 자리 폭만 지름 26m로 주변 압도

경주시 강동면 왕신리 78번지 고즈넉한 숲속 운곡서원에 우뚝 선 은행나무.
경주시 강동면 왕신리 78번지 고즈넉한 숲속 운곡서원에 우뚝 선 은행나무.

친숙한 자연이 교과서이었다. 자연에 대한 호기심으로 마을 어른들에게 꼬리를 문 질문을 쏟아내면 아예 손을 내저으면서 그만 물어보라고 하시면서 학교 선생님에게 여쭈어보라고 했다. 궁금한 질문은 교실보다 야외에서 더 많았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오늘날과 같은 학교는 없었다. 학문과 예절은 지방 서원에서 가르쳤다. 학문뿐만 아니라 덕망 있는 조상을 배향하기도 했다. 오늘 명품 노거수 탐방은 고즈넉한 숲속 운곡서원에 있는 경주시 강동면 왕신리 78번지 은행나무 노거수를 찾았다. 서원과 은행나무는 그 옛날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운동장 나무숲 아래에서 글짓기 공부도 하고 숲과 나무를 대상으로 그림도 그렸다. 달리기할 때 목표물이 되거나 반환점이 되었다. 쉬는 시간에도 나무숲에서 놀았다. 숲과 나무는 교실이고 놀이터이며 교과서이고 친구였다.

운곡서원은 조선 정조 1784년 세워져 안동 권씨 시조이자 고려 개국 공신인 권행 선생과 그의 후손 권산해, 권덕린 공을 배향하고 있었다. 오늘날 지방사립학교로 청소년을 교육했다. 서원 동쪽 계곡 용추대 위에 유연정(悠然亭)이 세워져 주위 자연경관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운곡서원과 유연정, 은행나무는 한 세트로 여겨졌다. 나무 아래 펼쳐진 계곡 따라 흐르는 물소리, 숲속 나뭇잎 사이로 흐르는 바람 소리, 파도처럼 물결치는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등 이곳저곳에서 나오는 자연의 소리가 합쳐진 화음은 마음을 평온케 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가을 햇살에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눈을 감고 천지의 소리에 몸을 맡겼다.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370년을 훌쩍 넘긴 은행나무의 장성한 줄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의 원천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경이롭다. 3m나 쭉 뻗어 올린 하나의 힘찬 줄기가 다시 여러 가지로 나누어 하늘로 솟구쳤다. 거침없음과 거대함에 놀랍다. 키가 무려 30m, 몸의 둘레가 6m로 어른 네 사람이 팔을 벌려 안아야 할 정도이다. 앉은 자리의 폭 지름이 26m나 되니 덩치만으로도 주변 모두를 압도하고 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노란 단풍잎은 또 어떠할까, 바닥을 수놓은 노란 융단은 얼마나 부드러울까. 아기 이불 같은 부드러운 융단을 살며시 밟으면서 걷는 느낌은 또 어떨까. 수나무라 노란 은행은 볼 수 없지만, 대신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 않아 좋다.

 

은행나무의 연륜과 거대함, 그리고 아름다움에 심취하여 진작 중요한 것을 놓칠 뻔했다. 눈의 현혹에서 벗어나 행단에서 제자에게 효도를 가르치는 공자를 상상해 보았다. 공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전 문명권에 깊은 영향을 끼친 세계 3대 성인 중 한 사람이다.

많은 사람이 운곡서원의 은행나무 노거수를 찾는다. 은행나무의 웅장함과 단풍의 아름다움만 즐길 것이 아니라 공자의 효에 대한 가르침을 자녀들에게 한번 상기시켜 주면 어떨까. 요즘 효를 물질적으로만 하려는 자녀들도 있는 듯하다. 효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효는 진정한 효가 아니다. 실제로 공자는 효가 도덕의 완성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라고 보았고, 최대의 덕목인 인(仁)도 효를 통해서 얻어진다고 보았다.

효는 부모의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을 뜻하지 않으며, 부모를 생명의 원천으로 인식하고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효도의 목적은 부모와 자식을 모두 번영하게 하는 것이다. 공자는 가사(家事)를 돌보는 것, 그 자체로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라 말했다. 이것은 가정 윤리가 단지 개인의 일일 뿐만 아니라 가정을 통해, 그리고 가정에 의해 공동의 선이 실현된다는 것을 말한다. 무너져 가는 가정 윤리를 운곡서원 은행나무 노거수를 통해 공자의 효 사상을 본받았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

화석식물이라 불리는 은행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불교와 유교가 도입되면서 향교, 서원 등에 심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무는 우리의 스승이라 했거늘 공손수(公孫樹)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은행나무를 보면서 효도와 자애를 가슴에 새겨본다.

운곡서원 은행나무 노거수 천연기념물 지정됐으면…

은행나무(Ginkgo biloba L.銀杏)는 중국이 원산지이다. 암수딴그루로 움직이는 정자(精子)가 있는 식물로 유명하다. 1문 1강 1목 1과 1속 1종만이 현존하는 식물로 화석식물이라고도 한다. 새, 다람쥐, 청설모 등 동물들은 은행 종자를 먹지 않는다. 운곡서원(雲谷書院)의 은행나무 노거수는 권종락이 단종 때 권산해의 억울함을 달래기 위해서 서울을 왕래할 때 영주 순흥에 있는 큰 은행나무의 가지를 꺾어다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가까이에 도연명의 자연사상을 본받기 위하여 유연정이 세워져 있다. 운곡서원과 유연정 그리고 은행나무를 한 세트로 그중 은행나무 노거수를 도 기념물이나 천연기념물로 품격을 높여주면 어떨까 싶다.

/글·사진=장은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