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트라클 (이정순 옮김)

오래된 정원에서 다시 거닐면서

오오! 말없이 노란 그리고 빨간 꽃들이여,

너희들 역시 애도하는구나, 너희 제신(諸神)들이여,

느릅나무의 가을철 황금빛이여.

파르스름한 자그마한 늪가에 미동도 없이 솟아오른다,

갈대는, 저녁이 되니 지빠귀들도 침묵한다.

오오! 이제는 너 또한 조아려라 너의 이마를

선조들의 쇠락한 대리석 기념비 앞에.

게오르크 트라클은 독일 표현주의 시인으로, 그가 그려낸 풍경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위의 시는 그의 시풍을 잘 보여준다. ‘노란 그리고 빨간 꽃들’은 뭔가 불길해 보인다. 가을 저녁이 드리운 늪가의 음울한 분위기 속에 피어 있기 때문이리라. “선조들의 쇠락한 대리석 기념비”는 트라클적 세계를 상징한다. 생동감을 잃고 점차 시들어가고 있는 세계를. 시인은 독자들에게 이 ‘쇠락’에 이마를 조아리라고 말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