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태

요즈음 고향을 천천히 내려가도

낯익은 寫眞이 너무 많아서

어제 내려간 내 얼굴을 찾을 수 없어라

찔레꽃 그 花類를 몰라도 봄이 가면

내게서 넝쿨지어 피어나던 찔레꽃이여

사람이 보기 전엔 전혀 외로움이 안되는

멀고 멈 섬의 모롱이 시커먼 낭떠러지여

요즈음 고향엔 너무나 라디오가 많다

보지 않고 뒷주머니에 그냥 집어넣는

흔한 新聞도 너무너무 많구나

사람이 죽어서 젊은 사람이 죽어서

산을 넘어가는 데도 너무나 輓詞가 많구나

아아 내가 자주자주 내려간 고향엔

한번도 안 내려간 내가 많이많이

들녘에 쓰러져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

낯익은 사진과 신문, 라디오가 고향의 “넝쿨지어 피어나던 찔레꽃”과 “섬의 모롱이 시커먼 낭떠러지”를 대체한다. 시인을 키워 왔던 고향의 아름다운 자연 이미지들을 근대의 산물들이 지워버리고 있는 것. 하여 시인이 고향에서 맞닥뜨리는 건 죽음이다. 고향은 근대화에 침식되는 동시에 젊은이들이 빠져나가 공동화되는 중이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이 죽어서” 고향에 울리는 ‘輓詞’는 죽어가는 고향을 상징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