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을 그리다 어반 스케치 여행
⑩ 운제산과 오어사

운제산과 오어사

삶이 부끄러워질 때

무엇 하나 하는 일 없이 밥이나 먹고

똥이나 싸는 존재로 느껴질 때면

오어사로 간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지만,

살다 보면 그렇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노력해도 손에 잡히는 수확이 없고

고운 말을 듣고도 비뚤게 되받아치곤 한다.

좋은 씨를 뿌린 곳에도 가라지가 자라지 않는가.

 

오어사 자장암
오어사 자장암

생각해 보면 참 당연한 일이다,

분명 내가 먹은 것은 밥인데

나에게서 나오는 건 똥이라는 사실은.

당연하지만, 슬픈 일이다.

비틀비틀 흔들리며 원효교를 지나갈 때

다리 아래 물가에서 누가 나를 부른다.

얘, 너는 똥을 누었구나. 나는 물고기를 누었단다.

물고기를 먹었으니 물고기가 나오는 게 당연하지 않니.

이리 내려다보렴, 이리 내려와 보렴.

여기 이 물속에 나의 물고기가 가득하지 않니.

 

원효교
원효교

내려다보니 못에는 팔뚝만 한 회색 잉어들이 힘껏 노닌다.

그 이름 오어지(吾魚池)의 어(魚) 자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나는 내 이름 석 자가 왜 이리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누구 하나 못난 이름 타고난 이는 없을 텐데.

오어지의 포동포동한 잉어들을 들여다보노라면

“나의 물고기, 저것은 나의 물고기야!” 하고

나도 한번 소리쳐 불러 보고 싶어진다.

- 글 : 이가은(서울대 국문과 박사 수료)

임주은
1982년 포항에서 태어났으며 대구가톨릭대 공예과를 졸업했다. 개인전 2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아트페어에 서양화 작가로 참여했다. 현재 포항문화재단 이사, 포항청년작가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포항지부, 경북청년작가회 등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