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호인

햇살 한 줄기에

그렇게 단단했던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움켜쥔 늑골마저 포기하고 형체 없이 사라져 갔다

온전히 녹여진다는 의미는

이승의 경계를 넘었다는 것

아버지의 붉은 상처까지 비우고 떠났다는 것

그 자리에 머위 순 같은 언어 하나 자라났다

다시 눈이 내리면

나는 아버지를 단단하게 뭉쳐드리고

맛있는 오리탕으로 밥상을 차려내고 싶다

그 아침이 다시 맑게 깨어난다면

시인은 ‘아버지 눈사람’을 만든다. 그 눈사람은 해가 뜨면 ‘붉은 상처’와 함께 “이승의 경계를 넘”을 것이다. 눈사람은 밤 시간에 행하는 기억을 통해 존재하기에. 그 기억은 사라지게 될 터, 하지만 그 흔적은 남는다. 사라진 “그 자리에 머위 순 같은 언어 하나 자라”나는 것, 시인은 이 언어를 받아 시 쓰기를 시작한다. 이 시 쓰기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 “다시 눈이 내리면”‘아버지를’ 뭉쳐드리겠다는 것을 보면.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