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희

난데없이 쓰러져야 할 때

꽃은 스스로 억울해하는 법 없이

아름다움을 끝낼 줄 안다

서정을 경계하며 살아온 지 얼마인가

함부로 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나는 아무 의미도 되지 못한 채

차라리 꽃이라도 될걸 그랬다

형형색색 지천으로

지천의 너머로

피어날걸 그랬다

시인은 왜 “서정을 경계하며 살아”왔을까. 시인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인 감정의 남발을 조심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함부로 반”할 수밖에 없는 세계가. “억울해하는 법 없이/아름다움을 끝”내는, “형형색색 지천으로” 피어 있는 꽃들이 그렇다. 의미 없이 피어 있다가 지는 꽃들. 시인은 “아무 의미도 되지 못한” 자신도 저 “지천의 너머로” 핀 꽃이 되길 희망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