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조

네가 아무리 기억의 머리칼 소중히 받들어도

기억은 시간과 어깨동무 언제란 듯 사라지고

시간 밖의 나는 시간의 그림자로 떠돌 뿐이다

똑딱똑딱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의 나 또한

모든 순간의 똑딱임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모든 기억은 백지 한 장으로 남겨진다

나의 아버지가 그랬고, 숱 많은 할머니도 그랬다

기억이란 눈앞이 가물가물한 무형의 실체

안녕이란 이별의 손수건에 다름 아니다

빈 나뭇가지의 몽유 그 허허로운 공백의

모든 기억은 백지의 백지로 자손을 잇는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되살리기 위해 기억한다. 하나 아무리 “기억의 머리칼 소중히 받들어도”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기억한다는 것은 결국 “시간 밖”에서 “시간의 그림자로 떠”도는 일, 기억 역시 시간과 함께 사라지고, 하여 기억의 끝은 “백지 한 장으로 남겨”질 뿐, 기억이란 “빈 나뭇가지의 몽유”임이 드러난다. 이는 ‘아버지’도, ‘할머니’도 마찬가지여서, “백지의 백지로 자손”은 이어지는 것이다. <문학평론가>